"지하철이 들어옵니다. 노란 선 바깥으로 서주세요" 안내방송이 나오면 역사 안 간이매점에 뛰어가 급하게 '좋은 생각' 잡지를 사들었다. 인터넷 연결 없던 그 시절 지루한 시간을 달래주기에 이만한 책이 없었다. 작은 가방에 들어가는 가벼운 책. 한쪽만 한 작은 사연을 읽다 보면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글 안에 웃음과 눈물이 모두 담겨있던 잡지. 지하철을 오가며 신간이 나오길 매달 기다렸다.
20대에 내가 좋아하던 잡지는 '페이퍼'였다. 중간 엽서처럼 있던 그림도 좋았고 단편으로 나오는 만화도 재미있었다. 패션잡지와는 다른 감성이 좋아 생애 처음 연간구독을 했던 잡지다.
그 이후로 잡지와의 인연은 없었다. 미용실에서 잠깐 보던 광고 많던 월간잡지가 다였다. 다시 잡지를 만난 건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어린이 잡지가 있다는 것도 놀랐고, 많은 종류와 다양한 내용에 한번 더 놀랐다.
잡지는 대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읽고 가는 날이 많았다. 매달 쓸 내용이 있을까 싶은 수학잡지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시사는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읽고 생각하기 쉽게 쓰인 글은 삽화가 들어가니 재미도 있었다. 아이들이 고민해 봐야 하는 요즘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집에 빌려갈 수 없는 특별한 상황도 한몫해서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면 잡지 코너부터 공략한다.
어느 날 인터넷을 하다 보리출판사의 어린이 잡지 홍보글을 보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첫째가 유독 많이 들고 있던 책이라 눈길이 갔다. 새 학기 행사로 국어사전까지 준다는 말에 혹해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그 후로 우리 집에는 매달 선물이 배달된다. 매달 말일과 월초가 되면 아이들은 경쟁하듯 우편함을 기웃거린다. 관리비 청구서만 오가던 우리 집 우체통에 활기가 돈다.
새로운 잡지가 도착하면 아이들 손길이 바빠진다. 본인 이름이 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들 눈은 글을 쫓고 손은 휘리릭 다음장으로 넘길 준비를 한다.
확인하고 나면 여러 번 읽기를 반복한다. 읽은 글로 동생과 생각을 주고받기도 한다. 요즘 핫한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대화할 거리도 풍성해졌다.
매달 배달된 잡지는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일이 되었다. 아이는 잡지를 꼼꼼히 읽고 붙어있는 엽서의 내용을 채운다. 엽서에 그려진 만화의 말풍선을 채우고 잡지에 실릴 코너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번화에서 재밌었던 내용에 대해서도 쓰고 가끔 고민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매달 주제에 맞는 표지그림에 도전하기도 한다. 표지 선정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꼭지에 실려 선물을 받기도 했다.
만원 남짓한 돈으로 행복할 수 있는 잡지의 힘. 문학에만 빠져 비문학 글을 꺼려하는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이고, 짧게 짧게 토막 난 글은 글밥 많은 책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책의 재미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빠르면 하루 만에도 책이 배송되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기다린다는 건 꽤나 낭만적인 일인 듯하다. 따끈따끈한 요즘 이야기를 받을 수 있는 잡지가 있어 아이들은 매달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