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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May 29. 2022

딸은 10년째 '미라클 모닝' 중

부엉이 엄마와 새벽닭 아이들

꾸뻑 꾸벅 조는 낮잠도 좋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밤잠도 좋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잠은 '늦잠'이다. 알람이 울리고 5분만 10분만 하며 잠드는 것만큼 맛난 잠이 있을까.

 

새들의 지저귐도 끝난 오전 10시. 졸리지 않을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나 물 한잔 마시고 오묘하게 조용한 집을 저벅저벅 걸어 다니는 일상.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루고 싶은 나만의 판타지 세계다.


"엄마! 배고파요! 벌써 7시라고요! 아침 언제 줄 거예요?"


나의 상상은 아이들 성화에 깨지고 만다. 화들짝 이불을 박차고 튀어나온다. 눈도 안 떠진 나는 용케도 계란을 풀고 국을 데우고 밥을 푼다.  아침식사는 오랜 시간 훈련으로 입력된 출력 값이다. 내 정신은 아직 꿈나라다.


첫째는 돌 지난 후부터 새벽 5시 기상을 했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새벽을 즐긴 셈이다. 잠드는 시간을 미뤄봤지만 기상시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밤 8시에 잠드나 9시에 잠드나 새벽 5시면 눈을 번쩍 떴다. 짙고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아침햇살을 막아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몸안에 알람시계가 있는지 5시면 일어나 놀아달라 내 눈을 찔러댔다. 무슨 볼일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해보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


동생이 태어나고  돌이 지나자 동생도 언니와 생활패턴이 같아졌다.  아이의 저지레 소리에 일어나 5 반에 아침밥을 먹였다. 밤새 체력 충전하고 배까지 든든해진 아이들은 까르르 거리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밑층 사람들을 위해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섰다. 모두가 잠든 새벽 6 . 놀이터에는 우리뿐이었다. 아침 7. 출근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마구 뛰어댔다. 탁탁 구두 소리가 자장가 같았다. 바쁜 사람들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네에 앉아 깜빡 잠이 들곤 했다. 아이는 내가 자는 틈을 기다렸다는    하고 넘어졌다.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네에서 떼구루루 떨어졌다. 모양 빠지게 구른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아이들은 때아닌 엄마의 몸개그에 깔깔 웃어댔다.

 

단체생활을 시작하는 어린이집에 가면 조금 늦게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았지만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이들은 흔들어 깨운 듯 6시에 벌떡 일어났고 9시 전에 잠들었다. 체력 소진을 못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기상시간이 더욱 빨라졌다. 8시에 잠들어 5시에 일어나는 패턴이 다시 돌아온 것도 그때이다.


카라반 캠핑 날에도 미라클 모닝은 계속된다.
해를 기다리던 둘째는 결국 앙! 해를 잡아먹는다.


 새벽닭 아이들은 5시에 일어나 각자 할 일을 한다. 학교 숙제도 가방 챙기기도 피곤한 저녁 대신 아침에 한다. 새해 첫날에만 보는 건 줄 알았던 일출도 아이들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하루의 시작을 해보다 먼저 하는 아이들. 늦잠꾸러기 해마중을 나가도 충분한 새벽시간이다.


5시 25분. 하루 독서의 반이상은 새벽에 이뤄진다.



덕분에 내 시간도 여느 엄마들과 다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아이들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기에 저녁 6시가 되면 칼같이 식사를 차려내야 한다. 눈에 잠이 가득한 아이들은 씻자마자 침대에 눕는다. 저녁 7시. 아이들은 1시간가량 책을 읽다 스르르 잠에 빠진다. 나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걸 확인하고 거실로 나온다. 아직 밤이라기에 이른 8시. 육아 퇴근이다.



커피로 겨우 뜨던 내 눈은 아이들이 잘 때쯤 반짝이기 시작한다. 저녁 10시. 하루 종일 흐리멍덩한 내 정신에도 생기가 돈다. 부엉이 엄마의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달이 뜨면 집중도가 수직 상승한다. 어렵던 책도 술술 읽히고 글도 잘 써진다. 이 시간은 고요하고도 사랑스럽다. 늘 듣던 음악도 유난히 달콤하고, 나 홀로 보는 심화 영화는 마음을 말랑이게 한다.


나의 이런 행복은 자정을 기점으로 걱정으로 바뀐다. 지금껏 놀았으니 아이들과 새벽시간 즐기기는 물 건너갔다. ' 일찍 일어나야지 ' 다짐은 이번에도 실패다. 아침에 초롱초롱한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밤의 유혹에 오늘도 진다. 밤에 바쁘게 행복한 죄로 나는 내일도 눈 반만 뜬 엄마일 것이다.




부엉이 집에 새벽닭 아이들이 태어났다. 해가 중천이라며 커튼을 치고 돌돌 말린 이불을 벗겨내는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이다. 5분만 더 자고 일어나겠다 아이에게 생떼 피우는 게 자존심 상해 나도 미라클 모닝에 도전해 보련다. 10년째 서로 양보할 생각 없던 기상 시간은 엄마의 패배로 끝이 난다.
과연 내일 아침은 어찌 될 것인가.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부엉이 엄마의 새벽닭 도전기. 나의 아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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