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면 아이스크림 먹을 수 있어요!
기발한 상상으로 가득 찬 곳. 반짝이는 것으로 가득 찬 보석함 같은 곳.
내가 생각했던 도서관의 이미지였다.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서관의 시작은 그리 로맨틱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처음 도서관을 찾았던 날. 도서관이 낯선 7살 첫째는 내 손을 꼭 잡는다. 어색한 마음에 끊임없이 내게 말을 시킨다. 대답이 시원찮으니 목이 마르다거나 화장실에 데려달라 조른다. 5살 둘째는 한술 더 뜬다. 책장 사이로 숨바꼭질을 한다. 제지당하자 뒷짐 지고 걸어 다니며 언니 오빠들 읽는 책에 참견을 해댄다.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하고 다짐받았건만 아이와의 약속은 공중으로 날아가 흩어져버렸다. 재밌는걸 죄다 못하게 되자 둘째는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길을 막고 누운 둘째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누워있는 둘째를 건너거나 돌아가야 했다. 편안히 누워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둘째를 보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일으킬 여유도 없이 옷 채 아이를 들어 복도로 쫓아 보냈다. 아이는 짐짝처럼 들려가면서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 웃어댔다.
첫인상이 나빴던 탓인가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기피하는 장소가 된다. 주말 아침 "도서관 가자!" 소리에 아이들은 방으로 후다닥 숨는다. 엄마에게 꾸중 듣던 장소였기에 설득이 쉽지 않다. 비장의 카드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둘째의 눈이 순간 반짝인다. 먹는 것에 흥미가 없는 첫째에게는 아이스크림에 스티커 선물까지 얹는다.
내 야심 찬 계획은 쉽게 이뤄질 리 만무하다. 도서관에 얌전히 앉아 책 읽기. 엄마가 읽어주면 잘 듣기. 어떤 책이 있나 흥미롭게 둘러보기. 꿈꿨던 것들은 모두 계획표에서 지워진다. 목표가 바뀐다. '도서관은 재밌는 곳이야!'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2년 동안 했던 도서관 루틴은 이랬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어오자마자 매점으로 갈 것인지 놀이터에 놀 것인지 선택한다. 도서관에 온날은 과자, 아이스크림, 사탕 원하는 건 맘껏 먹을 수 있다. 장난감들 개시하는 날도 도서관 가는 날이다. 꽥꽥 오리 소리가 나는 비눗방울, 통통 잘 튀는 공, 훌라후프. 새 장난감은 모두 도서관 놀이터에서 시작한다. 아직 어린 나이라 내 방법은 통했다. 엄마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을 홀렸고, 필릴리 피리소리에 아이들은 제 발로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먹을 것과 노는 것에 적응하고 나서는 볼거리로 시선을 돌렸다. 시립도서관은 커다란 규모만큼이나 프로그램도 많았다. 내가 책을 고르는 사이 아이들은 도서관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거나 영화를 보았다. 가끔 미술전시회도 열렸다. 향기로 보는 고흐전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전시다. 고흐의 그림마다 어울리는 향수를 배치해 시향 하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시각과 후각으로 익힌 그림은 오래도록 아이들 기억 속에 남았다.
나들이를 다녀온 주말도 도서관 가기는 빠지지 않았다. 자연에서 실컷 논 아이들은 차에 타면 꿀잠에 들었다. 잠든 사이 도서관으로 가 책을 빌렸다. 아이들이 일어날 때쯤이면 대여는 끝이 나있었다. 언제 왔는지 기억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폭풍 칭찬을 했다. 오늘도 도서관 재밌게 즐겨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잠이 깨 어리둥절한 아이들은 칭찬으로 사탕 하나 받아 들고 뿌듯해했다.
놀고먹기만 한 도서관이라 도움 될 일 없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 보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책 읽는 언니 오빠들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재밌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가끔 어린이실로 따라와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많은 책들 사이에서 아는 책을 만나면 반가워하기도 했다. 가기 싫다고 방으로 숨던 아이들은 서서히 도서관과 친해졌다. 1년 차 때 자료실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던 아이들은, 2년 차가 되니 가끔 인형을 들고 책을 구경했다. 그리고 3년 차. 지루해 몸을 꽈배기처럼 꽈대던 아이들은 이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골라 자리를 잡는다.
어언 도서관 생활 5년 차. 어린이 도서실에 입장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뿔뿔이 헤어진다. 남편은 책 20권이 담겨 묵직해진 가방을 들고 도서 반납함으로 간다. 나는 아동 신간 코너로 간다. 아이들은 평소에 잘 읽지 못하는 만화책을 향해 돌격한다. 도서관에서는 뭐든 된다. 있고 싶은 만큼, 보고 싶은 만큼, 먹고 싶은 만큼, 뭐든 자유다. 30분만 더 있다 가자 졸랐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1~2시간은 꿈쩍 않을걸 알기에 우리 부부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도서관을 향한다.
도서관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는 곳이라 여길수 있는 건 어릴 적 경험 덕분이라 생각한다. 시작은 아이스크림 덕분이었을지 모르나 몇 년 동안 아이들은 도서관에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그러니 한여름에는 에어컨이 펑펑 나오고, 한겨울에는 히터가 펄펄 나오는 도서관으로 여러분을 초대해본다. 어쩌면 도서관은 생각보다도 좋은 곳일 수도 있으니!
도서관 즐기기 Tip
요즘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만은 아니다. 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무료인 만큼 예약이 치열하니 알람을 맞춰두고 티켓팅에 성공해 보자.
1) 공연 - 극장이 있는 도서관이라면 매주 영화 상영이 있다. 가끔 뮤지컬 공연도 하니 도전해 보자.
2) 미술 전시 - 도서관에서 하는 미술 전시도 있다. 그림을 보는 것만이 아닌 체험할 수 있게 되어있어 아이들이 즐기기에 제격이다.
3) 새로 생긴 도서관에 있는 문화체험실. 어린이실 입구에 있는 이곳에서 매주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유료지만 프로그램이 매주 바뀌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번 수업은 사운드 액자 체험 수업이다. 바다 그림을 터치하면 파도소리가 난다.)
4) 요즘 어린이 도서관에는 빅북이 많다. 작은 책에 거부감이 있다면 빅북을 활용해 보자. 글씨도 그림도 10배 큰 책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