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둘째는 첫째와는 다르다. 아이의 다리가 유난히 튼실하다. 돌 지나고도 한참 뒤 10kg이 겨우 되었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6개월 만에 10kg를 돌파한다. 둘째의 태몽은 커다란 고래꿈이었다. 아들 태몽을 꿔서 그런 건가. 아이는 기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모두 빠르다.
시간은 흘러 첫째가 7살 둘째가 5살이 되었다. 나는 호기롭게 아이들과 책 읽기를 시작하려 했다. 어색한 도서관을 2시간이나 헤매 겨우 책을 빌려왔다. 첫째는 눈을 반짝이며 내 옆에 앉는다. 나는 벅찬 마음으로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5초. 싫증 내기도 짧은 그 시간. 둘째는 내 옆에서 물구나무를 선다. 망아지 같은 나의 둘째는 엄마 관심을 끌기 위한 모든 것을 총동원한다. 발로 책을 차고 품을 파고든다. Tv를 보여 달라 떼를 쓰고 물을 마시겠다 조른다. 반응을 하지 않으려 애써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다. 무서운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나의 작전은 모두 실패다. 남편에게 둘째를 맡기고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야근으로 얼굴 보기 힘든 남편에게 기대기는 무리다.
작전을 바꿔야 했다. 아이를 세심히 관찰해 보았다. 내 눈에 익숙하여 '원래 그러니까'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둘째에게 바라는 목표가 바뀌었다. 읽기? 쓰기? 그리기? 모두 아니다. 올해 목표는 바로 가만히 앉아있기! 목표가 정해지자 할 것들이 명확해졌다.
'체력을 모두 소진시키자!' 나는 놀이터 죽순이가 되기로 한다. 먼저 등원 전 가볍게 산책을 했다. 공벌레를 찾고 그네도 타며 아침에 솟아난 체력을 가라앉혔다. 하원도 1시간 당겨했다. 아이는 "안녕히 계세요!" 인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놀이터로 달려갔다. 입장부터 패기 넘치는 아이는 친구도 금방 사귀었다. 내가 놀아주고 친구들이 놀아주며 2시간 동안 실컷 뛰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지만 아이는 누구보다 쌩쌩했다. 첫째 하원 후에는 집 앞 놀이터로 자리를 옮겼다. 바뀐 놀이터에서 아이는 노는 게 처음인 양 또 신나게 뛰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저녁시간이었다. 미리 준비해둔 밥을 빨리 먹이고 목욕을 시켰다. 3시간을 놀고 따뜻한 물에 씻은 둘째는 노곤 노곤해졌다. 우리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말할 힘도 없는 둘째는 붙박이장이 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듣는 것뿐. 앉아있기 드디어 성공이다!
다음 목표는 싫증 극복하기였다. 아이의 집중력은 민들레 꽃씨 같았다. 탐스러운 씨앗은 바람 한 점에 휙 흩어졌다. 책 내용이 재미가 없어지면 아이는 바로 싫증을 내었다. 나는 성우가 된 양 목소리를 수십 개 바꿔가며 읽었다. 그리고 아이 흥미를 끌만한 책을 찾으려 도서관을 이 잡듯 뒤졌다. 방귀, 똥 이야기 같은 재미있는 책은 얼마간 아이의 주목을 끌었다. 글씨 하나 없는 책을 빌려 그림만 보고 수수께끼 풀듯 한참을 읽기도 했다. 의사표현 빼고는 말이 많지 않던 아이의 언어는 시간이 흐르며 풍부해져 갔다.
매일 2시간 넘게 책을 읽어 내느라 나는 인어공주도 아닌데 목소리를 잃었다. 하얗고 예뻤던 나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계절을 보내며 현무암처럼 까매졌다. 목도 아프고 내 체력은 바닥났지만 사실 힘든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6개월 바라보고 시작했던 책 읽기는 1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금방 흥미를 붙일 거라 예상했지만 아이들은 정말 천천히 바뀌어갔다. 드디어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끝났다!" 자축했지만 스스로 읽는 데는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변화는 언제나 예상보다 늦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늦지만 확실하게 아이들은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년간의 쓰디쓴 노력으로 나는 달콤한 결과를 얻어냈다. 유튜브와 투니버스에 중독되었던 둘째는 서서히 책과 친해졌다. 책만 읽어 주었는데 둘째는 혼자 한글을 깨쳤고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어나자마자 먼저 하는 것도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것도 독서다. 하루에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 넘도록 읽는다. 아이를 동반한 약속이 있는 날. 나는 책을 챙긴다. 책만 꺼내면 몸을 비틀던 아이는 이제 책을 꺼내면 얌전해지는 아이가 되었다.
길고 멀리 보고 시작한 독서가 아니었다. 재미만 붙여주고자 했던 일은 1년을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지나 보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독서하며 나는 아이의 취향과 생각을 엿볼 기회를 얻었다. 말랑거리고 따뜻한 아이들은 다음장 다음 이야기를 눈을 반짝이며 기다렸다. 나는 이야기보따리의 주인이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세상 어떤 권력도 부럽지 않은 이야기의 주인. 어쩌면 재미있었던 건 아이들 뿐만이 아닌 듯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에너자이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께 응원을 보내본다. 힘이 뻗쳐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이. 엉덩이에 뿔나서 한 자리에 앉지도 못하는 아이. 모든 것에 금방 싫증을 내는 아이. 모두 겪어본 산 증인이 여기 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해낸다면 아이의 새 세상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체력은 노는데도 읽는데도 모두 쓰일 수 있다는 점. 아이의 체력에 지치는 누군가에게 이글이 용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