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에 가냘프게 서있는 첫째는 흡사 막 태어난 기린 새끼 같다. 한발 내걷기가 버겁다. 바들바들. 아이는 다리를 후덜 거리며 서보려 애쓴다.
20분간의 체험수업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선생님은 강습 방법이 통하지 않자 아이 발을 들어 올려 스케이팅 감을 주입시킨다. 아이의 몸은 이마저도 거부한다. 보는 내가 민망한 시간. 이 정도면 의기소침해 질만도 한데 아이의 표정은 왜인지 즐겁다.
둘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균형감 있게 빙판 위에 선다. 선생님께 멈추는 법과 가는 법을 배우고는 복사한 듯 곧바로 따라 한다. 큰 발과 튼튼한 하체로 서있는 둘째가 의젓하다. 같이 수업 듣던 1살 위 오빠와 2살 터울 언니를 제치고 발걸음 떼기도 걷기도 1등으로 성공한다.
짧은 강습시간이 끝나고 자유 연습 시간이 되었다. 자매는 집에서 타 온 코코아를 한잔씩 마시고 다시 얼음 위로 올라선다. 부축해주시는 선생님이 안 계시니 잡고 갈 수 있는 보조 펭귄을 대여한다. 둘째는 보조 펭귄을 잡고 잘 걷는다. 둘째가 잠깐 쉬는 사이 첫째가 펭귄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다.
"엄마 한 바퀴 돌고 올게요!" 첫째는 내가 도울 수 없는 커다란 얼음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이를 사지에 보낸 부모처럼 나는 안절부절못한다. 첫째의 길은 예상대로 험난하기 그지없다. 운동신경 없는 아이는 한걸음마다 엉덩방아 한 번씩 찧는다. 펭귄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엉덩이로 간 건지 걸어간 건지 모르게 반 바퀴를 전진하던 아이는 결국 펭귄이 날아갈 정도로 크게 넘어진다. 넘어진 아이 주위로 사람들이 쌩쌩 달린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는 서지도 못한 채 기어간다. 그리고 씩씩하게 펭귄을 세워 다시 타기 시작한다. 나는 주책없이 눈물이 난다. 포기하지 않는 아이가 대견스럽다.
뭐든 쉽게 하는 둘째는 싫증이 잦다. 간절함도 없고 미련도 없다. 첫째는 다르다. 시작점이 저 밑이다. 그렇지만 첫째는 도전한다. 운동신경이 없는 대신 끈질김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첫째는 늦되지만 해낸다. 결과가 모두 좋지는 않지만 도전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성취감이 되고 그중 하나는 아이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두루두루 잘하지만 금방 질려하는 둘째와 시행착오는 많지만 결국 해내는 첫째. 나는 누가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 그저 스포츠 만화를 보듯 자매를 지켜볼 뿐이다. 타고난 천재와 노력형 천재의 대결. 거침없는 둘째의 능력은 짜릿하고, 고난을 이겨내는 첫째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둘다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이 만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첫째인 듯하다. 성장하는 캐릭터를 응원하는 건 독자의 기본 소양이랄까? 어쩔 수 없이 내 눈길은 비틀거리는 첫째에게 쏠린다.
이런저런 생각을 삼키며 관중석에 앉아본다. 이제껏 그러했듯이 한 발짝 떨어져 앉아 아이들을 응원할 것이다. 내게는 올림픽보다 흥미진진한 아이들의 스포츠. 앞으로 펼쳐질 그녀들의 서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