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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고 겁 많은 아이
단단하게 키우는 법

by 티티카카

첫째가 태어났다.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키우기 쉬울 거란 기대를 가지고 품에 안는다. 하지만 세상에 키우기 쉬운 아이는 없다. 첫째는 겁이 많고 모든 감각에 예민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모든 것이 까다로워 내 피를 말렸다. 밤에 수없이 깨기를 반복하다 6살에 통잠 자기 성공했을 정도니 엄마들은 내 마음을 아실까?

예민한 아이는 내 감정도 잘 읽어냈다. 엄마의 작은 표정에 아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 기분에 따라 아이는 시무룩해지기도 신나 하기도 했다. 아이가 내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나는 늘 기분 단속을 해야 했다.


아이가 7살이 되자 나는 책 읽기를 시작했다. 연령대에 맞는 책을 검색하여 전래동화를 빌려왔다. 아이는 내가 책을 읽어갈수록 겁에 질렸다. 이불을 턱끝까지 올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나는 아이가 책을 거부하는 것인지 이 책이 싫은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대화를 시도했다. 아이는 '무섭다'로 대화를 끝냈다. 그날 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는 평소에 갈등을 싫어했다. 아마 선한 주인공이 감내해야 할 시련들을 못 견뎌한 듯싶었다. 다음날 책을 읽어주며 아이 표정을 살펴보니 악이 벌을 받는 장면 또한 불편해했다. 혼나는 걸 무서워하는 아이다웠다. 디즈니 영화를 싫어했던 이유도 알아낸 것 같았다. 디즈니 영화는 전래동화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의 대립이 줄거리의 주축이다. 영화 <라이온 킹>을 보다 스카가 나오면 눈을 질끈 감았던 이유,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우상 <겨울왕국>의 엘사를 보고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모두 납득되었다. 감정몰입이 심한 아이를 위해 선과 악이 뚜렷한 책들은 마음이 단단해질 나중으로 미뤄 둬야 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첫 책은 자연관찰 책이었다. 바다 동물 육지동물 할 것 없이 아이는 관찰책을 즐겼다. 동물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성인도서코너에서 도감도 빌려다 주었다. 학명을 읽을 줄도 모르는 아이는 두꺼운 도감과 세밀화를 열심히 보았다. 나이에 맞는 책도 좋지만 아이가 흥미 있어하는 분야는 유아 성인 책 구분 없이 빌려주었다. 책을 외우다시피 읽어 새 박사가 된 아이는 산을 궁금해했다. 우리는 산에 찾아가 새를 관찰하고 그려보며 책을 즐겼다. 아이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좋아하는 책은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었다. 다양한 책을 봐주는 게 엄마의 바람이겠으나, 나는 흥미를 붙이는 게 먼저라 생각했다. 읽어달라면 같은 내용도 10번이고 읽어줬다. 아이 덕분에 새 박사 칭호를 나도 얻었다.


나뭇가지를 주어 꽃망울을 만들고, 벚꽃잎으로 토끼 얼굴을 만들었다.


아이의 예민한 기질은 예술로 풀어내려 노력했다. 청각이 예민한 아이에게 시끄럽고 정보가 가득한 도시보다는 조용하지만 다양한 소리가 가득한 자연을 보여주려 애썼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거리의 간판 색보다 옅고 짙은 꽃들의 색에 흥미를 가졌다. 예상대로 아이는 자연 안에서 충만해졌다. 우리는 산에 올라 나무와 새를 관찰했다. 떨어지는 벚꽃잎 잡기 놀이를 하고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계절을 보냈다. 좋아하는 것들에 쌓여있으니 아이의 감각 예민도도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풀과 벌레 진흙이 많은 곳에서 아이는 조금씩 편안해졌다. 편안해진 아이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아이는 악기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이가 자신만의 해소 방법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낙엽으로 꽃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는 지금 10살이 되었다. 내 기분을 단속하게 했던 예민함은 '배려심'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되었다. 예민하다는 건 어쩌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집중하며 살피는 아이는 관찰력이 뛰어났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생각지 못했던걸 찾아온다. 겁이 많다는 것도 달리 보면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을걸 알기에 아이 등 하원 길이 안심이다. 자주 닳는 아이의 마음 배터리도 걱정 없다. 그림과 책과 음악으로 아이는 충전된다.


엄마의 영혼까지 갉아먹을 것 같은 아이의 예민함은 그의 강점이 되기도 한다. 천천히 기다려 준다면 어떤 날 까칠한 아이는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우리에게 와줄 것이다. 허니 함께 느긋하게 기다려 보길 청한다.

예민하고 겁 많은 아이의 세상. 부모가 아는 것보다 그 세상은 아주 넓을 것이다. 까탈스럽고 신중하게 고른 아이만의 세상. 그 미지의 세상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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