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람쥐가 다이어트를 하네!" 중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둘째 등장이다. 문 천천히 닫으라는 잔소리 위에 "오 마이 갓스 레인지"를 올려쌓는 장난꾸러기. 8살 된 우리 집 막내다.
막내는 커도 아기 같다던데 우리 집은 다르다. 어릴 때부터 허당끼 낭랑한 첫째에게 손길이 더 갔다. 둘째는 손끝이 야무지다. 가르쳐준 적 없어도 정리도 잘한다. 화장실 휴지가 다써 갈 때쯤이면 창고에서 새 두루마기 휴지를 꺼내 가져다 둔다. 학교 다녀오면 가방정리도 해두고 선생님께서 당부하셨던 준비물도 스스로 잘 챙긴다. 대견해하며 더욱 칭찬해줘야 마땅한 둘째인데, 나는 가끔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다.
둘째는 올해 입학한 초등학교 새내기다. 아이는 입학식 다음날부터 혼자 등교했다. 학교 앞 아파트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첫 주부터 너무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걱정과 다르게 아이는 씩씩하게 등하교를 해냈다. 하교 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오기도 했다. 부끄러움 타던 유치원 때 성격은 버렸는지 모르는 아이와도 잘 섞여 놀았다. 작은 놀이터에서 이틀 놀던 둘째는 삼일째부터는 운동장으로 진출했다.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축구공으로 남자아이들과 축구도 했다. 몸집보다 배는 큰 골대 앞에서 꽃게춤을 추며 골키퍼를 하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아이는 학교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등교 전 가방 메고 집을 나서던 아이가 머뭇댄다. "잘 다녀와" 인사하는 내 눈을 몇 초간 바라보더니 말을 꺼낸다. "엄마~ 만약에 말이야. 나 학교 끝나고 오는 거 걱정되잖아? 그러면 데리러 와도 돼.” 큰 눈을 끔뻑이며 아이는 말을 덧붙인다. "안 와도 되는데 엄마가 나 보고 싶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데릴러와도 된다고~ " 나는 씩 웃어 보인다. "오늘은 놀이터 안 가고 후문으로 나올 거야." 아이의 화법에 웃음이 난다. 아이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조바심 내며 말을 이어간다. "내 친구 ㅇㅇ이는 동생이 두 명이래. 엄마가 바쁘겠지? 그런데도 ㅇㅇ이 엄마는 학교로 데리러 오더라고." 아이 얼굴에 쑥스러움이 스친다. "응~ 오늘 후문으로 데리러 갈게" 내 대답에 아이 얼굴이 환해진다.
데리러 오는 친구들 엄마가 부러웠던 걸까? 의젓해 보이는 아이 얼굴이 갑자기 아기 같아 보인다. 씩씩한 아이의 투정이 참으로 반갑다. 혼자서 뚝딱뚝딱 잘하는 막내의 어색한 어리광이 좋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잠시 모르는 척해야겠다. 독립심도 좋지만 당분간은 아이의 투정에 넘어가 주기로 한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린다. 엄마를 발견하자 아이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반갑게 뛰어 온다.
신나게 달려오던 아이가 걸음을 멈추더니 아침처럼 빤히 날 바라본다. "왜~또~" 알 수 없는 아이의 표정에 궁금증이 더해간다. 아래위로 나를 보던 둘째는 누가 듣을세라 조용히 속삭인다. "엄마! 내일은 이쁘게 치마 입고 와요!"
기어코 날 웃게 만든다. 봄옷 쇼핑을 가야 하나보다. 예쁘게 입고 하교하는 예쁜 딸 모습을 눈에 많이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