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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해방기

by 티티카카

스물아홉. 서른이 되기 전 20대의 마지막 봄에 결혼을 했다. 동창들 중 두 번째 결혼이었고, 일찍 한 결혼만큼 나는 일찍 엄마가 되었다. 얼마 전 일 같은데 시간은 흘러 첫째는 벌써 10살. 어엿한 10대가 되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친구들 눈이 퀭 한 게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친구들의 아이는 이제 돌쟁이 거나 3~4살 되는 유아였다. 나는 어제 푹 잔 얼굴로 카페에 앉아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 혼자 밥 먹는다!" 우와~친구들 눈에 부러움이 스친다.

"우리 집 애들 혼자 응가 닦는다!!" 기저귀 갈아주다 나온 엄마들 웃음이 터진다.

"우리 집 딸들 혼자 씻는다!!!" 가능한 일인 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눈빛이다.

"우리 집 초등학생들 혼자 잔다!!!!" 부러운 마음이 존경의 눈빛으로 변한다.


명품 가방 자랑도 아니고 번듯한 집 자랑도 아니다. 그저 이것만으로도 나는 최고로 부러운 사람이 된다. 훗. 이 자랑을 하기 위해 10년을 참아왔다. 혼자 밥 먹고, 화장실을 가고 씻고 자는 일들. 응당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는데 이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인내는 달다. 나는 이제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엿한 학부모다.



핏덩이를 사람 만들기 위한 과정은 험난했다. 친구들 연애하고 여행 가던 서른 살 겨울. 나는 조그만 아이와 온종일 씨름하고 있었다. 돌도 안된 아이는 내가 화장실 간 20초의 시간도 애달파했다. 아이에게 화장실 문 너머는 낭떠러지였다. 문을 닫으면 엄마가 절벽으로 떨어진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엄마를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리며 서럽게 꺽꺽 울었다.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단 말인가! 문 너머 다른 차원으로 가는 포털이 있었으면 백번이고 뛰어들었을 것이다. 목놓아 엄마를 찾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감히 탈출을 상상하곤 했다.

이렇게 사랑받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세상 어떤 남자도 내가 1분 동안 보이지 않다고 울지는 않았다. 이틀 감지 않아 떡진 머리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는 세상에 없던 인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음료수를 다 마셔 서러운 4살.


둘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유모차를 탈 때면 둘째는 초마다 뒤를 돌아봤다. 가족 여행 중, 칭얼거리는 첫째를 업다 힘들어 아버님께 슬쩍 유모차를 맡기고 걸었다. 몇 보 가지도 않았을 때 유모차 운전실력으로 둘째는 단번에 엄마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엄마를 찾아 빠르게 눈을 돌리던 둘째 시야에 언니만 업고 있는 엄마가 들어온다. 그저 몇 발자국 뒤에 걸었을 뿐인데 아이는 버림받은 것 마냥 목젖이 보여라 울어댄다. 그 고집 덕분에 유모차는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오직 나만의 것이 되었다. 아무리 높은 언덕이 있어도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모두가 있어도 첫째는 꼭 내 손을 잡아야 했고 둘째 유모차는 내가 밀어야 했다. 자매의 과분한 사랑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나도 버거운데 아이 둘이 합세하니 육아는 10배로 힘들어졌다. 나는 늘 시소 가운데 앉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아이들은 나를 봐달라 성화였다. 남편이 사우디로 장기 출장 간 집안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두 자매는 하나뿐인 부모를 차지하려 싸워댔다.


아이의 질투심을 얕보지 마라. 둘의 투기는 어떤 사극 보다도 치열했다. 그네를 타면 둘 중 한 명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한번 더 밀어주기라도 한날에는 셀쭉해져서 눈을 흘겼다. 한 번은 지나가는 강아지가 귀여워 호들갑을 떨었다. 평소에 그리 싸워대던 자매는 갑자기 한 팀이 되어 나를 노려봤다. 나는 지나가는 개조차 마음껏 예뻐하지 못하고 아이들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엄마 품이 고팠던 4살, 2살 때는 잠들 때마다 전쟁이었다. 둘째는 수유를 핑계로 나를 돌려 눕혔다. 등만 보고 자야 하는 첫째는 서러웠다. 나는 젖을 먹이며 한 손을 뒤로 돌려 첫째를 쓰다듬었다. 첫째 손바닥에 하트를 그려주면 아이는 조금 진정되었다. 예전에 봤던 광고가 생각났다. 벤치에 다정히 앉아 어깨 뒤로 돌린 손을 다른 여자와 잡는 바람둥이 남자. 그게 바로 나였다. 몰래몰래 공평한 사랑을 주느라 내 몸은 오징어 구이처럼 꼬이고 꼬였다.






도합 10년을 엄마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자매는 올해 봄, 돌연 나와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3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 없으면 못 잔다고 눈물을 글썽이던 막내는 이제 언니와 잠자리에 든다. 굿 나잇 인사도 담백하다. 작은아씨들에 나오는 숙녀처럼 “안녕히 주무세요” 새침하게 인사하고 둘이 포로로 잠들러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속닥속닥 거리는 시간도 늘었다. 몰래 엿들으면 둘이서 엄마 흉도 보는 듯한다. 질투를 받던 나의 상황은 역전되었다. 딸들끼리 노는 게 질투나 끼어들면 아이들은 정색을 하고 나를 쫓아내기도 한다.


10분 놀아달라고 애교 3종 세트를 보여주던 아이들은 이제 사라졌다. 못 이기는 척 인형 하나 들고 놀이에 뛰어들면 박수로 환호해주던 아이들도 없어졌다. 살찐 내 배를 보고 동생이 들어있는 줄 알고 엉엉 울던 막내는 이제 동생 생겨도 슬프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이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왔거만 나는 어쩐지 조금 서운하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따지고 싶은 기분이다. 10년간 받아온 절절한 사랑이 벚꽃처럼 바람에 떨어져 내린다.

엄마가 전부였던 아이들 세상이었건만 이제 내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나의 인기 절정기는 이렇게 막이 내리나 보다. 아이들과의 산책길. 양손 가득 잡혔던 자매의 손이 남편 손으로 바뀐다. 아이들처럼 보드랍지는 않지만 그대뿐이라 손을 잡아본다.


봄이 간다. 절절했던 사랑도 이제 보내주련다. 늘 그려왔던 나의 육아 해방기는 가는 봄과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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