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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Apr 22. 2022

유튜브 육아맘의 도서관 적응기

예민한 첫아이는 6살 되던 해 통잠에 들었다. 아무도 깨지 않는 밤은 어색했다. 아이 덕분에 3시간 연속으로 잠든 적이 없던 쪽잠 감옥에서 6년 만에 출소했다. 두부를 먹으며 감옥 탈출을 축하했어야 하는 그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야 했던 그때, 불행히도 내게 번아웃이 왔다.


내게 온 암흑의 시간 동안 아이를 키운 건 8할이 유튜브고 2할은 투니버스였다. 아이들은 엄마와 대화 대신  '짱구는 못 말려'를 보며 아침식사를 했고 '캐리와 장난감' 유튜브 채널을 보며 저녁식사를 했다. 4살밖에 안됐던 둘째는 짱구에게 말을 배웠고, 6살인 첫째는 인형놀이를 유튜버처럼 했다.


1년 뒤, 내 몸과 마음을 추슬렀을 때는 이미 강을 건넌 뒤였다. 아이들의 중독은 심각했다. 특히 어렸던 둘째의 상태가 심각했다. 영상이 없으면 차도 타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침묵에 익숙하지 않았다. 유튜브를 틀어주지 않자 마트 가는 내내 얼굴이 터져라 울어댔다. 영상 없이 조용한 차 안은 아이의 울음으로 꽉꽉 들어찼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이의 상태는 나의 업보였다. 달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모든 매체와 잔인한 이별을 준비했다.



유튜브와 투니버스를 대신할 것으로 책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중 동화는 특히 좋아하던 장르였다. 아이들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장담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책을 찾아주마' 나는 포부도 당당히 어린이 도서관으로 입장했다.


제일 먼저 찾은 도서관은 차로 25 거리의 시립도서관이었다. 신설된  2달밖에 안된 최신식 건물이었다. 도서관 내부는 신세계였다. 높은 천장과  창문에서는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낮은 책장과 책들은 모두 새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유아 자료실로 향했다. 낮은 테이블에 4살쯤 되는 아이와 엄마가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1 동안 투니버스와 유튜브에 빠져있을 동안 다른  아가들은 책을 보고 있었구나' 그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에  권씩 읽으면  방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어줄  있을까?' 권수를 세어보기도 전에 패의 결말이 눈앞에 그려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좋아했던  냄새에 멀미가 나는 듯했다.

부러움을 뒤로하고 책을 빌려 보기로 한다. 들어올 때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방대한 책양에 나는 쪼그라든다. 창작동화만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다르게 책장의 분류는 다양했다. 창작문학, 과학, 역사 등 어느 분야부터 빌려야 하는지 감도 안서는 나는 책장 사이를 괜스레 왔다 갔다 했다. 우선 익숙한 창작동화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몇 번 들어보았던 출판사 책들도 있고 아예 처음 보는 출판사 책도 수두룩 하다.

내가 책을 고르는 동안 아이들은 로비로 쫓겨나갔다. 책장 사이로 숨바꼭질하고 소리 지른 것이 이유다. 로비로 간 둘째는 아빠 셔츠를 잡고 늘어지듯 매달려 있었고, 첫째는 아빠 손을 잡은 채 소파에 거의 누운 채로 앉아있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이들에게 시달려 영혼이 나간 남편을 보니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이만 철수! 눈앞에 보이는 10권의 책을 대충 골라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으로 찾은 도서관은 차로 15분 거리의 구립도서관이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외관은 낡아있었고 책도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유아실 옆 수유실은 미닫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격자무늬 나무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허름한 도서관이지만 장점도 있었다. 다른 도서관에서 대출 불가였던 인기 높은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텅 빈 유아실을 차지하고 자유롭게 책도 고를 수 있었다. 도서관 앞마당도 소박하니 예뻤다. 건물은 오래될수록 낡지만 나무는 반대다. 오래도록 성실히 자란 나무는 높고 무성했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찾아 새들은 날아들었다. 내가 책을 고르는 사이 아이들은 도서관 앞마당에서 즐겁게 놀았다. 집에 가자고 조르는 대신 아이들은 열매를 줍고 새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의 짜증이 줄자 남편도 잠시 한숨을 돌렸다.


마지막은 도보로 20분 거리의 육아지원센터다. 평온한 평일 낮. 홀로 센터로 향했다. 1층에 장난감과 책을 대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취학 전 유아를 위한 곳이었기에 다른 도서관에 비해 도서 규모가 작았다. 몇 개 안 되는 책장에 안심이 되었다. 선택지가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떼쓰는 아이들이 없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구경할 수 있었다. 2곳의 도서관을 둘러봤다고 책들이 조금 눈에 들어왔다. 나 보기에 예쁜 그림책 몇 권을 빌렸다. 다른 도서관에 없는 사운드북과 장난감도 대여했다. 아이들은 책 보다 곁들여 빌려온 장난감에 흥미를 보였다. 둘째는 그중 미니 축구골대를 환영했다. '엄마가 도서관에 다녀오면 장난감이 생긴다!' 아이들은 나의 외출을 그 정도로 이해한 듯했다. 장난감 덕분에 울고 쫓겨났던 도서관 이미지가 조금 바뀐 듯해 좋았다.



어린이실 책들이 눈에 들어오고 고를 수 있게 되기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방대한 책들에 압도당해서 멀미가 날듯했던 서가는 2달이 되자 익숙해졌고 1년이 지나자 눈에 완벽히 들어왔다. 5년 차. 이제는 어떤 도서관에 가도 헤매지 않는다. 책장 한 칸 걸러 읽었던 반가운 책들이 보인다. 책 찾는데도 도사가 됐다. 검색하지 않아도 종류와 작가만 알면 대충 위치가 파악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던데. 나는 이제 도서관 번데기쯤은 되나 보다.


유튜브로 육아한 엄마에게 도서관은 도전이었다. 나는 좁은 책장을 드나들며 욕심을 내고 조바심을 가지며 실망을 했다. '짱구를 단번에 잊을 수 있는 재밌는 책을  골라야지!' 욕심냈던 책들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외면당했다. 남들보다 많이 읽히겠다는 나의 조바심은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에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몸 반만 한 책을 잠자리에 끌고 들어오는 아이를 보며 실망했던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글씨 없는 책은 어때요?'  '연령별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줄글은 언제부터 읽나요?' '만화책은 정말 나쁠까요?' 도서관을 다니며 나는 수많은 질문을 했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들을 이제 하나씩 적어보려 한다. 나는 과연 유튜브에 뺏긴(내드린) 육아권을 찾고 도서관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 '도서관에 가면 아이스크림 먹을 수 있어요! -피리 부는 엄마'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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