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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Jun 30. 2022

"엄마 이 숫자로 돈 보내줘요."

언니는 돈을 너무 좋아해!

둘째의 말에 우리 부부는 어리둥절해진다. 첫째는 함부로 돈 쓰는 법이 없는 아이다. 일주일에 받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가지고 문방구에 가서는 한참을 돌아만 보다 빈손으로 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첫째가 돈을 좋아한다고?


"이것 봐. 게임 한판 하면 되는데 안 쓰잖아. 언니는 돈을 너무 좋아하는것 같아!"

마트 안에 있는 게임기 앞에서 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둘째가 삐죽인다. 둘째 용돈은 이미 바닥난 상태고, 언니 용돈으로 게임을 하고 싶었는데 언니가 고민만 하다 거절한 모양이다.


둘째의 주장은 이러하다. 언니가 돈을 쓰지 않는 건 돈을 너무 좋아해서란다. 사탕을 아껴두는 것처럼 돈을 너무 좋아하면 안 쓰고 아껴두는 거란다. 둘째의 문장에 틀린 곳이 없어 설득당할 뻔했다.

"그럼 oo(둘째)는 돈을 안 좋아해?"

"응! 나는 돈 안 좋아해. 그래서 생기면 다 써버려!"

언뜻 그것도 맞는 말이니 우리 부부는 웃음이 난다.

"oo는 돈을 안 좋아해서 가지고 있지 않고 다 없애는구나?"

"응! 내 말이 맞지?"

자신의 말이 꽤 논리적이었다 생각하는지 둘째 어깨가 한껏 솟아있다. 신박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아이 몸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것일까?



6월. 학교생활에 완벽 적응한 둘째는 하교 후 분식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실내화 주머니를 한 손에 걸고 친구와 걷는 폼이 제법 초등학생 같다. 떡볶이 국물을 입가에 잔뜩 묻히고 하교한 둘째가 재잘댄다.

"엄마. 친구랑 분식집 갔다 왔는데요. 떡볶이 사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서 친구한테 오징어 튀김 1인분 사줬어요. 나도 1인분 먹었고 "

"사줬다고? 떡볶이도 먹고 오징어튀김도 먹고. oo이 이번 주 용돈 다 썼겠네."

"응. 괜찮아. 사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는 친구가 사줄걸요? 그럼 친구 기분도 좋을 거야."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난다. 벌써 한턱내기의 맛을 알아버리다니. 역시 돈을 싫어하는 아이답다.


© amysuraya, 출처 Unsplash


얼마 전,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야 할 둘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태권도 끝나고 내렸어. 오늘 화요일인 건 알고 있지요?"

"응. 갑자기 요일은 왜 물어?"

"오늘 타코야키 트럭 오는 날이잖아요! 엄마가 사갔나 궁금해서 전화한 거예요 "

"아니. 안 사 왔어. 먹고 싶어?"

"응. 나 18개 들어있는 거 사고 싶어."

"집에 간식 많아. 저번 주에 먹었으니까 이번 주는 그냥 넘어가자."

"엄마 나오기 귀찮으면 내가 아저씨한테 번호 물어볼게~ 엄마 핸드폰에 돈 있지요? 타코야키 트럭으로 돈 보내줘요. 아 잠깐 끊을게요. 아저씨한테 물어봐야겠다"

내가 시장이나 가게에서 입금하는 걸 본 모양이다. 8살에 입금을 들먹이는 아이 말에 머리가 잠시 멍해진다. 몇 분 뒤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엄마! 아저씨한테 허락받았어. 숫자가 많아. 내가 불러줄게. 여기로 타코야키 10개 돈 보내주세요!"

미안한지 타코야키 8개 빼고 부탁하는 아이가 앙큼스럽다. 입금을 하고 한참 뒤, 타코야키는 역시 가다랑이포가 춤을 출 때 먹어야 맛있다던 둘째는 놀이터에 앉아 반을 해치우고 비닐봉지에 반을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나 할머니한테 받은 열천 원 있어. 열천 원 아닌가? 뭐였지? 아! 십천 원! 십천 원에서 몇 장 줄게. 다음에도 또 핸드폰 돈 보내줘요! 오늘 타코야키가 너~무 맛있었어요."

아이는 어른이 되면 핸드폰이 생기고, 핸드폰 안에는 돈이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슬슬 경제개념을 알려줘야 하나 고민하다 생각이 멈춘다. 경제공부 전에 산수부터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오늘치 돈의 단위부터 일러준다.

"둘째야. 열천 원 아니고, 십천 원도 아니야. 천 원 열 장이면 만원. 만원이야. 알았지?"

"에? 그럼 다섯 장이면 뭐예요? 반 만원? 오천 원? 다섯 천 원?"

십천 원에 반 만원까지. 나는 웃음이 난다. 아직 숫자 100까지 밖에 모르는 1학년에게 우리나라 원의 단위는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이 숫자로 돈 보내주세요!"는 보이스피싱도 사기도 아니었다. 타코야키가 너무 먹고 싶었던 8살의 바람이었을 뿐. 안된다 하면 수긍하지 않고 되게 만드는 둘째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본다. 긴숫자를 알면 맛난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낸 둘째 덕에 오늘도 나는 웃는다.


 싫어해서  써버리는 둘째 응원하며.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다.

"둘째야. 한턱내기도 좋지만 가끔은 돈을 좋아해 주길 바란다! 현명해질 너의 소비생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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