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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Jan 17. 2023

아이에게 배우는 싸움의 기술

기가 세다의 반대말은 기가 약한 것일까? 나는 그중 어는 곳에도 해당이 안 된다. '기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내 것일지도.


내 눈은 적대감이 담기지 않는다. 아무리 무서운 표정을 지어봤자 통하지를 않는다. 남편은 나를 동물로 보자면 초식동물 중에서도 제일 작은 토끼급 이란다. 약육강식의 피라미드에서 제일 아랫단계. 카리스마는 엿 바꿔 먹은 말랑한 사람.


어릴 적에는 엄마 아빠가 큰소리만 내도 눈물이 그렁해졌다.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목소리에 겁을 먹었다. 어른이 돼서도 정도만 약해졌을 뿐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사소한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길가에 굴러가는 비닐봉지 움직임에도 어깨가 들썩이게 놀라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떤다. 


 고로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다. 마음과 눈빛이 단단한 사람. 나는 그들이 참 부럽다.


첫째는 나와 같게 태어났다. 나 닮아 잘 놀란다. 겁먹기 일쑤라 나는 큰소리 내지 않게 늘 조심했다. 

둘째는 우리와 다르다. 목청부터 남다르게 태어난 아이는 단단하다. 원하는 게 있으면 가져야 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강하게 표현한다. 내가 부러워하던 카리스마 있는 사람. 어쩌면 그건 내 아이일지도.


이제 8살이 된 둘째는 학교에 가며 작은 사회 안에 들어갔다. 내가 해본 적 없어 못 가르쳤던 싸움의 기술. 40을 눈앞에 앞둔 나는 8살 아이에게서 싸움의 기술을 배워 본다.




© jyotirmoy, 출처 Unsplash


ep.1 경고는 타이밍.


 말랑한 첫째가 집에 돌아와 투덜거린다. 

"엄마. 우리 반에 oo가 계속 내 실내화를 숨겨둬요."

"하지 말라고 해봤어?"

"하지 마! 했는데도 쉬는 시간에 훽 벗겨가기도 하고요. 신발 갈아 신으려고 벗으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달려와서 뺏어가요."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나. 계속 그래?" 

가만 듣던 둘째가 한숨을 작게 쉬더니 언니에게 다가온다.

"하지 마. 그거 언제 한 거야?"

"신발 뺏어가기 전에."

"그게 아니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해?"

" 뺏기지 말고 실내화를 꽉 잡고 있어. 그다음에 눈을 딱! 봐. 그리고 다섯을 세."

"그냥 눈을 보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응. 눈을 봐. 하지마는 그다음에."

"뺏으려 할 때 하는 게 아니고, 뺏기면 하라고? 하지 마아~ 이렇게? 크게? "

"하아. 그게 아니라고. 따라 해 봐 하. 지. 마!"


아. 순서가 잘못된 거구나.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다섯 셀 동안 눈을 쳐다본다. 그리고  단호하게 경고한다.

메모하자.


ep2. 일일이 대꾸할 필요 없어.


이번에도 첫째가 투덜거린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나 키 작다고 놀렸어요."

"하지 말라고 해봤어?"

"나 키 안 작아! 했지요. 그런데도 계속 놀렸어요. 나중에는 외계인이라고도 놀리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너도 외계인이야! 했어요. 무섭게 말했는데도 슬라임 괴물 이라던가 계속 바꿔가면서 놀리는 거예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한 손에 주스를 든 둘째가 지나가며 말을 보탠다.

"언니. 그냥 대답을 하지 마!"

"놀리는데 가만있어?"

"쓸데없는 말을 하는데 뭔 대답을 해주고 있어. 둘 셀 동안 쳐다본 다음에 그냥 지나가."


아. 반격할 생각만 했지 무시할 생각을 못했구나. 말도 안 되는 말에는 대답 안 하기. 싸움 스킬이 또 하나 는다.



ep3. 싸울 결심


하교한 둘째가 말을 꺼낸다.

"엄마. 쉬는 시간에 내 필통 자기 사물함에 숨긴다는 oo이 있죠?"

"응. 똑같이 해줬다며. 아직도 그래?"

"네. 그래서 오늘을 싸워야겠다 결심을 하고 학교에 갔죠."

"싸울 결심을 했다고? (웃음)"

"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책상을 싹 치우고 팔씨름 대결을 신청했어요."

"갑자기 팔씨름? 결심했다던 싸움이 팔씨름이야?" 기껏해야 말싸움을 생각했던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뜬다.

"아니. 싸우기 전에 힘이 얼마나 쎈지는 알아야 할거 아니에요." 생각지 못한 답변에 웃음이 난다.

"아. 그래서 이겼어?"

"아뇨. 졌어요. 키는 나보다 작은데 힘이 세더라고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깜짝 놀랐어요. 남자애들은 작아도 힘이 센가 봐요."

"그럼. 키랑 등치만으로 모르지. 싸울 결심은 팔씨름으로 끝난 거야?"

"네. 팔씨름 졌으면 싸워도 질 것 같아서. 깨끗하게 포기했어요."

"그럼 이제 필통은 어떡한데?"

"쉬는 시간에 선생님 책상 위에 필통 올려놨어요. 그건 못 가져가더라고요. "


아. 싸움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구나.  함부로 덤비지 않기. 진정한 고수의 기술이다. 





경고는 단호하게. 맥락 없는 시비는 무시하기. 상대를 봐가며 덤비기. 

놀라고 겁먹고 당황하는 내게 전하는 단단한 막내의 싸움의 기술이다. 아이의 말이지만 틀린 말이 없어 나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여 본다. 


아이를 보고 배워본다.  카리스마는 기운이라 배워 바뀔지는 모르지만 나의 40대는 단단해 지기를. 작년보다 조금 놀라고 가끔 겁먹고 작게 당황하는 단단한 토끼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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