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하교한 둘째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실내화 가방을 돌리며 기세 좋게 들어와야 할 둘째의 낯선 모습에 걱정이 앞선다. 집에 와서도 입을 꾹 닫던 둘째의 모습이 생소하다. 나는 묻지 않고 기다린다. 한참이 지나자 아이는 드디어 입을 뗀다.
"엄마. 어제 수학 시험을 봤거든요. 제일 빨리 풀고 싶어서 후다닥 풀고 1등으로 냈는데, 선생님이 오늘 저만 부르는 거예요. 선생님 책상으로 갔더니 한 개가 틀려있었어요. 문제를 잘못 봤더라고요. 다시 풀고 나왔는데,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틀린 애들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우리 반 다 물어봤는데 틀린 친구가 아무도 없었어요. 나만 틀린 건가 봐요."
평소에 수학이라면 자신 있던 둘째의 실수에 내 장난기가 도진다.
"아이고. 우리 oo이 꼴찌 했나 보네. 해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기만 하더니 결국 꼴찌를 해냈네. 문제가 어려웠어? 수업시간에 딴짓해서 이해를 못 했나? 아이고. 속상해서 어쩐데."
둘째는 큰 눈을 꿈뻑꿈뻑거리다 기죽었던 표정을 싹 지우고 따져 든다.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거는요…
아! 선생님이 잘못 가르친 건가 봐요!
아이의 대답에 멍해진다. 괘씸하게 선생님 탓을 하다니. 한마디 해주려 하려던 참에 아이가 말을 이어간다.
"수업시간에 매일 잘 듣지는 않았지만 딴짓은 안 했어요. 시험 볼 때도 실수는 했지만 열심히 풀었고요.
수업도 잘 듣고 시험도 열심히 풀었는데도 틀린 거면.. 음 선생님이 잘못 가르친 거 아닐까요?"
실수는 인정하나 이해를 못 해 틀린 거는 아니다. 몰라서 틀린 거였다면 그건 선생님의 수업의 문제다. 고로 나는 떳떳하다.
아이의 뻔뻔함에 머리가 멍해진다. 내 탓에 익숙한 나는 남탓하는 아이의 당당함이 낯설다.
이런 생각은 아이 몸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당당함이 뻔뻔함으로 변한 시점에서 나는 결국 웃음이 터진다.
나는 가까스로 웃음을 거두고, 횡설수설 선생님 수업을 변호하고 남 탓하는 아이를 나무란다. 보아하니 둘째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있다. 먹히지 않는 잔소리를 하며 표정을 살피니, 방금까지 풀죽었던 모습조차 오간데 없다. 미워할 수 없는 나의 싱글생글이.
"뭐. 꼴찌면 어때요. 학원도 안 다니고 문제집 한 개도 안 풀어도 수학익힘책은 매일 백점 맞는다구요!"
아이는 금세 기운을 차리고 태권도복을 야무지게 챙겨 입는다. 도복 띠를 휘날리며 태권도장으로 향하는 아이를 보며 웃어본다. '그 자신감. 엄마 좀 나눠주면 안 되겠니.
둘째의 첫 꼴찌한날. 꼴등에도 기죽지 않는 나의 딸을 힘차게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