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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 드는 100가지 이유

제일 싫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이 되는 시간. 10초.

by 티티카카

"싫어! 싫어!! 나 그거 싫어!!!"


둘째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다. 오늘 '싫어'의 주인공은 도복이다. 몇 주 전부터 태권도를 다니고 있는데, 오늘은 심사 날이라 도복을 입고 가야 한다. 처음 입는 도복이 내키지가 않는지 표정이 안 좋더니 돌연간 심사 날이 오늘이 맞는지 트집을 잡는다. 당장 확인을 해야겠다고 몇 분을 졸라대길래 핸드폰을 건네주었더니 용케 관장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관장님! 저 ㅇㅇ이예요! 오늘 도복 입는 거 맞아요??"

관장님은 도복 입는 날임을 확인해 주신다. ㅇㅇ는 대답을 듣자 정말 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얼굴이 구겨진다. 어쩔 수 없이 도복을 입고서도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띠는 절대 안 할 거라며 고집을 피운다. 윗옷이 길어서. 바지가 끌려서,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도복은 한번 입으니 아이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다음날 아이는 도복을 입은 채 피아노 학원을 갔다. 그리고도 부족했는지 내복 위에 띠를 차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며칠 전 '싫어'의 주인공은 수영복이었다. 전날 수영가방을 정리해두지 않아서 아침에 급히 세탁한 래시가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사두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수영복이 있어 입으라 권하니 절대 안 입는단다. 억지로 입혀보았으나 엉덩이가 끼느니, 등이 아프느니, 목이 졸리느니, 가지가지 이유를 들며 싫어를 외친다. 겨우 설득해 수영장을 보냈다. 어찌나 짜증을 내는지 듣기만 한 아빠가 화가 나서 윽박을 지를 정도로 '싫어 노래'를 부르던 둘째는 해맑아진 얼굴로 수영장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 수영복만 입었다.


"싫어"는 온몸으로 표현된다. 얼굴이 찡그려지고 목소리가 뒤집어진다. 아기 때처럼 바닥에 드러눕지는 않지만 발을 쿵쿵거리고 손을 휘저으며 감정을 표현한다. 8년째 한결같은 아이의 짜증 이건만 나는 새로이 적응이 안 된다. 화가 부르르 나지만 잠깐 심호흡을 하고 설득해 본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큰 아이다. 싫어는 무섭고 불편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겠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나는 혼내지 않고 권유해 보려 애쓴다. 취향을 넓혀주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차기도 하다. 제일 싫은 것이 제일 좋은 것으로 둔갑하는 걸 보는 일은 내 육아의 재미다.





아이는 오늘 아침. "엄마가 제일 싫어!" 한다. 스스럼없는 표현에 눈이 찡그려지지만 난 쓰읍! 하며 지나가 준다. 기세 좋게 말해놓고는 제풀에 눈치를 보던 아이는 학교 가기 전 "아까 거짓말이었어요~ 사실 엄마가 제일 좋아요!" 한다. 나는 또 웃고 만다. 아이의 '싫어'와 '좋아'사이엔 얇은 종이 한 장뿐인 듯하다.


이번 주도 아이는 두 개의 "싫어!"를 극복해 냈다. 이겨낸 만큼 아이의 세계는 한 뼘 늘어났을 것이다. 앞으로도 힘껏 이겨내길 바라본다.

싫어! 보다 좋아! 가 더 많아질 너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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