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성선' 앞에서 넘어졌어

by 티티카카

하교한 아이의 얼굴이 어둡다. 오늘은 받아쓰기를 한 날이었다. “쓰기 어려웠어?” 평소에 받아쓰기에 자신 있었던 터였다. 한번 연습해보고도 늘 100점을 맞아왔는데 의아한 기분이 든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는 분명히 결승선이라고 썼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불러주시는걸 잘 들어보니 결성선인 거예요~ 그래서 고쳐 썼는데. 결국 틀렸어요.. “ 웃음이 난다. 선생님 사투리에 당했구나. ‘결성선 앞에서 넘어졌어.’ 쓴 데로 읽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치원 때 했던 아이 말이 떠오른다. 하원한 아이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처음에는 친구들이 사투리를 많이 썼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사투리 안 써요! 신기하죠!”

‘네가 쓰는 게 사투리야.’ 말해주고 싶은걸 꾹 참고 고개만 끄덕인다. 아이는 이제 울산 말투에 적응한다.


사투리모음.jpg 유행이었던 억양 테스트. 아이들은 정확하게 경상도 억양으로 말한다.





4년 만에 이사 온 경기도. 아이는 편의점에서도 슈퍼에서도 고개를 갸웃한다.

“엄마! 여기 사람들이 다 엄마처럼 말해요!”

그새 사투리에 익숙해진 아이의 눈에는 사람들이 다 엄마 말투를 따라 하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나도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다. 중학생 때 동생과 기차를 타고 여수를 가던 길이었다. 도착지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 말투가 모두 큰엄마 같은 거였다. 억양이 같으니 목소리도 비슷하게 여겨져 정말 큰엄마가 탄게 아닌가 뒤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이이들은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는듯하다. 이사를 다니니 특별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울산 동네 친구만은 못하지만, 아이들 말투에 사투리 억양이 입혀져 있다. 첫째는 6살에서 9살까지, 둘째는 말을 한참 배우던 4살에서 7살까지 울산에서 지냈다. 우리 아이들의 경상도 억양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사투리는 어린 시절에 기반을 두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많아진다.

언어학자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러니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표준어를 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미치는 환경의 영향. 참으로 흥미진진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웃게 만드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