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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짧은 아이

by 티티카카

이유식 먹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 신생아 때부터인가. 모유 먹는 아이는 가끔 분유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온몸으로 젖병을 거절했다. 아기는 4시간을 굶어도 울기만 했다. 대쪽 같은 아이 고집 덕분에 나는 외출 때마다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와야 했다. 묽은 죽으로 이유식을 시작하며 아이의 거부는 더욱 심해졌다. 목구멍으로 무언가를 넘기는 게 불편했는지 넣어준 죽을 혀로 날름날름 밀어냈다. 먹는 것보다 버리는 밥이 더 많았다. 입안에 물고 있어 엄마를 한껏 기대시키고는 '퉤' 턱받이에 뱉어냈다.


영아를 벗어나 유아가 된 후에도 아이는 여전했다. 감각이 예민해 식감, 향, 모양 모든 것에 깐깐했다. 2~3숟가락 먹이기가 어려웠다. 고기 종류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스님도 아닌데 아이는 스스로 채식을 했다. 매일 당근, 파프리카, 과일만 입에 넣었다. 데친 브로콜리는 잘 먹으면서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는 왜 뱉어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위도 작은지 배도 금세 찼다. 아이들에게 우유가 필요하다던데, 100ml 마시면 너무 배불러 저녁을 건너뛰었다. 이러다 보니 식사시간은 서로에게 고문이 되어갔다.


아이 4살 되던 어느 날. 나는 큰맘 먹고 곰국을 끓였다. 뼈를 먹으면 뼈가 자란다는 건 미신같이 느껴졌지만, 소문이라도 믿고 싶어서 애써 끓여 보았다. 마시는 거니 먹어주겠지? 나의 기대와 다르게 아이는 하원 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역질을 해댔다. 커튼에서도 고기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찡그리던 그날. 결국은 곰국은커녕 저녁도 건너뛰었다.

비위가 약한 아이는 씹는 것도 귀찮아했다. 한입 먹을까 싶어 간 소고기로 미역국도 끓이고 동그랑땡도 해보았지만 아이는 고기 냄새를 귀신같이 알고는 고개를 저었다. 향에 민감한가 싶어 생강가루, 마늘가루, 청주 등등 잡내 없애는 양념들을 모두 넣어봤지만 허사였다. 이럴 거면 과자라도 먹여보자 했는데 과자도 몇 개 먹고 나면 흥미를 잃었다.

© alschim, 출처 Unsplash



아이는 학교 입학할 때까지 소량의 버섯과 두부 그리고 생선으로 겨우겨우 단백질 함량을 맞추며 커왔다. 학교에 입학하고 아이가 제일 기다리는 날은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은 채식하는 날. 급식판에 고기가 사라지는 날이다. 모든 학생이 싫어하는 날을 아이는 참으로 기다린다. 다행인지 채식 없는 날에도 식단에 해산물이 많이 등장했다. 바다 근처 학교라 그런지 아귀찜이 나오기도 했고, 좋아하는 생선 열기도 나왔다. 내 염려와는 다르게 아이는 큰 거부 없이 급식실을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씩씩 거린다.

"엄마! 나 이제 급식실 선생님들한테 인사 안 할 거야!!"

"왜? 안 먹는다고 혼났어?" 나는 지레짐작하고 걱정한다.

"아니~ 내가 감사합니다 하고 크게 인사했더니, 웃으시면서 고기를 한국자 더 퍼주시는 거 있지! 인사하면 반찬 더 주나 봐. 나 이제 인사 안 해!!"

헛웃음이 났다. 어느 초등학생이 고기반찬 더 준다고 화가 난단 말인가.



10살이 된 지금. 아이는 고기를 조금씩 먹는다. 맛없다고 햄버거, 피자, 탄산음료는 거부하지만 가끔 후라이드 치킨도 먹는다. 그마저도 8살까지는 치킨 튀김옷을 벗겨내고 먹었는데 이제 튀김옷도 간간히 먹으니 이 얼마나 큰 발전인가. (아이가 버려둔 튀김옷만 먹고 엄마는 나날이 몸무게 갱신 중이다)


채식주의를 존중하지만, 아이는 성장기다. 단백질이 필요할 시기. 그래서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고기를 먹이고자 하는 나와 아이의 밀당은 10년째 진행 중이다.

저녁 준비시간. 한참 전에 버렸어야 하는 이유식용 도구를 꺼낸다. 삶은 닭고기 안심을 실처럼 갈아 카레에 몰래 넣는다. 아이는 양파인 줄 알고 한 그릇 맛있게 비워낸다. 닭고기는 부드럽고 냄새가 덜나 속이기 제일 좋다. 큼직한 고기 망치 사용도 내 주 업무다. 고기가 부드러워져 한 조각이라도 더 먹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망치를 들고 토르에 빙의한다.


이제 3학년 올라가는 아이가 키 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 보인다. 키가 작은 나는 여태껏 바짓단을 수선해야만 해 한이 쌓일 지경인데 아이도 그 길을 따라갈까 무섭다.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속여서 미안해 딸. 딱 한 숟가락!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 먹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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