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취!! 에에~취!"
봄이다. 이제 곧 꽃이 필 것이다. 개화시기를 코가 먼저 안다. 방에서 부엌에서 거리에서 요란스레 재채기를 한다. 봄에는 알람시계도 필요 없다. 남편 코 고는 소리가 내 재채기 소리로 바뀌면 아침이다. 훌쩍이며 식사 준비를 한다. 냄새를 못 맡으니 요리도 재미가 없다. 입맛 까다로운 첫째가 간을 봐주다 배가 찬다.
누군가는 봄을 패선으로 느낀다. 외투가 얇아지다 트렌치코트까지 와야 봄인 것이다. 누군가는 입맛으로 봄을 느낀다. 달래된장국 정도는 먹어야 봄이 왔구나 싶다. 나는 다르다. 일기예보도 필요 없다. 봄을 코로 알아차린다. 재채기가 나야만 봄이 왔음을 인정할 수 있다. 에취! 아 완연한 봄이로구나.
밖은 온통 벚꽃이다. 나무들은 얽히고 섞여 통로를 만든다.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은 온데간데없다. 하얀 바탕에 분홍빛 한 방울이 번져간다. 아름다운 벚꽃길을 걸으며 훌쩍인다. 어른어른 피어나는 아지랑이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싹을 내고 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향기가 잡힐 것만 같다. 손수건을 쥐고 벚꽃길을 지난다. 봄이 절정에 다르면 비염도 절정이다. 개나리 철쭉까지 버텼던 코다. 더 이상은 무리다. 알레르기약이 나설 때다. 자손을 번창하기 위한 침엽수와 나는 봄마다 이리 싸워댄다. 화창한 5월을 벌게진 눈으로 다닌다.
집에만 있기엔 아까운 봄이다. 코로나가 생긴 후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거리에서 훌쩍이면 눈치가 보인다. 비염인이라 등에 써붙이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비염도 유전인지 이번 봄부터는 첫째도 재채기를 해댄다. 남편은 첫째와 내 재채기 소리를 똑같다며 웃는다. 코 모양이 같으면 소리도 같은 건가.
벌게진 눈이 돌아오고 재채기도 가라앉으면 반팔을 꺼내야 할 때다. 절기를 코로 아는 게 우습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귀한 손님처럼. 올해도 봄과 함께 비염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 어차피 함께 가야 할 내 알레르기. 환영은 못하겠으나 인사는 해본다.
어서 오세요. 이번 봄은 살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