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티카카 Apr 15. 2022

몸을 혹사시켜 얻는 기쁨


날이 선선하면 산뜻해서 좋고, 날이 더우면 가벼워서 좋고, 추우면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좋아 산을 찾는다.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줄줄이 외면서도, 등산로 초입은 후회로 가득하다. 숨이 찬 것도 같고 허벅지가 당기는 것도 같다. 집에서 나온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 산 입구라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오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를 백 가지씩 대며 산을 오른다.

 

일단 시작했다면 그다음은 감탄이다. 투덜거리던 마음이 갑자기 돌아서 상쾌한 기분이 든다. 들꽃도 나무도 새소리도 크게 다가온다. 산책하듯 걷는다. 화살표도 보고 남은 미터도 계산해 본다.  

 
 저 멀리서 오르막이 보이면 종아리에 힘이 단단히 들어간다. 걱정과는 다르게 오르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다 오르고 뒤를 돌아볼 때야 경사에 놀라지만 오르는 중에는 그저 길일뿐이다. 오르막 덕분인지 잠깐씩 나오는 내리막은 선물 같다.  

  

중턱쯤 가면 생각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내 몸의 모든 근육들이 손을 들고 존재감을 뽐낸다. 뇌가 2개인 것처럼 잡생각에 시달리는 내게 몇 안 되는 평화의 시간이다. 몸이 힘들면 정신이 잠깐 쉬어 주는 건가. 평소에 몸을 안 써서 뇌가 일을 더하는 건가.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면 내 숨소리와 심장소리뿐이다. 이정표와 풍경은 눈 밖에 난지 오래다. 그저 앞사람 걸음에 맞춰 걷는다.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리듬이 생겨난다. 앞뒤로 무언의 박자가 있다. 너무 느려지지 않게 너무 빠르지도 않게 한 덩이가 되어 함께 오른다. 숨이 꼴 딱 꼴 딱 넘어갈 것 같다. 그래도 걷는다.  
 

정상이다. 초입부터 되뇌던 "다 왔다" 말이 진실이 되는 순간이다. 방금까지 힘들었던 몸이 갑자기 치유받는다. 성취감이 든다. 오르는 내내 후회했던 마음이 단숨에 돌아선다. 조금은 나에게 후해진다.
 

하산은 템포가 빠르다. 숨차게 오르던 길도 그저. 지나간다. 몇 분 차이로 몸이 가벼워진다. 신남에 무릎이 나가지 않게 단속한다. 내 몸과 마음의 힘듦이 사라지면 그때서야 사람들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사람들 얼굴엔 부러움이 스쳐간다. 눈으로 응원을 하며 나의 걸음에 집중한다.  


소파에 앉아 커피나 마실 걸 후회하던 등산 초입을 지날 때 다음을 기약한다. 해내고 나니 행복한 기억이 힘든 기억을 이긴다. 늘 그렇다. 알면서도 다음 시작에서 나는 또 투덜일 것이다. 그리고 내려오며 생각할 것이다. 잘 왔다고. 산은 참 행복한 곳이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과 함께 온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