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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Apr 16. 2022

물욕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내가 사고 싶은 건..

 

" 내 원체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요." - 미스터 선샤인/김희성


나는 무용한 것을 사랑하는 어린이였다. 욕심도 없고 경쟁도 싫어하고 분쟁 피했다. 어릴  피구 시합  맞는 아이들이 가여워 허공에 공을 던졌다. 나와 상관없는 교실  싸움에도 내일 인양 마음 졸였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가지고 싶은 것도 없었다. 용돈은 늘 남았고 간절히 원했던 생일선물도 없었다. 중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였던 휴대용 카세트를 선물 받은 날도 뛸 듯이 기쁘기보단 덤덤했다. 아이돌 사생팬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불타오르지 않고 늘 뜨뜻미지근했다.

이런 성향이 어른이 된다고 달라졌을까? 지금도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명품을 줄줄 꿰고, 지나가는 사람들 옷차림만 봐도 브랜드가 척척 나오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무리 들어도 뭐가 뭔 지 모르겠다. 모르니 부럽지도 않다. 그저 내가 부러워했던 건 사람들의 열정이었다. 무언가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 그건 참 부러웠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여행에 빠졌다. 시작은 물푸레나무와 떡갈나무였다. 제인 에어와 작은아씨들. 세계명작에 나오는 그 나무들이 어떤 건가 궁금했다. 도서관에 가서 나무 도감을 찾아봤다. 소설에 나오는 숲을 보고 싶었다. 소설에 나오는 거리가 궁금했다. 십여 년을 궁금해만 하다 갑자기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길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은 돈으로 비행기 티켓을 샀다. 여행을 떠나 그토록 궁금해했던 숲을 걸어보았고 사막을 보았고 사람들을 보았다.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것도 해내고 싶은 것도 많다고 하신다. 열정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듯 아직도 정정히 일하고 계신다. 평생토록 여행이라고는 두 분 고향이신 여수에 2박 3일 정도 내려가시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건너뛰는 해가 많다. 자투리 시간까지 아껴 쓰시는 부모님을 보면 존경스럽다. 이뤄 놓은 것이 많으니 이제 쉬셨음 하는데, 도전하고자 하는 일들은 부모님을 놓아주질 않는다.
 

나에게 돈이 생긴다면 내가 20대 때 보았던 여행길을 부모님께 선물해 드리고 싶다. 나무지게를 벗어던지고 싶어 고향을 탈출한 아빠에게, 예쁜 옷이 너무나 가지고 싶었다던 여수 멋쟁이 엄마에게 내가 보았던 길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찬찬히 손을 잡고 걸으며 내가 사랑하는 무용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잠자는 시간 아깝다며 표시된 관광지를 죄다 돌아보실걸 알지만. 가끔 풍경 좋은 카페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게 해드리고 싶다.  
 

살 수 있다면, 나는 엄마 아빠의 시간을 사고 싶다. 무용한 것에도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달, 별. 꽃 바라보며 사는 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참 행복하다고 걸음마다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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