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간절한 시간이었다. 태생이 에너지가 넘치는 외향형 엄마는 내향형인 나를 바꾸려 무던히 애쓰셨다. 엄마를 사랑했기에 엄마가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노력했다. 애써도 안되기에 피하기도 하고 바뀐 척도 해보고 싸우기도 했다. 엄마가 나를 바꾸고자 한 만큼이나 나도 엄마를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마음속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사춘기를 지나, 가족이 안중에도 없는 20대를 지나, 이제 두 아이를 둔 30대가 되니 비로소 엄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단점으로만 보이던 모습이 장점으로 느껴지고 엄마가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매사에 적극적인 엄마는 일을 시작하자 더욱 빛났다. 나와는 다른 열정적인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저 엄마와 나사이의 간극이었던 성격차이는 둘째가 태어나며 상황이 바뀌었다. 내 얼굴에는 엄마 모습이 거의 없고 내 성격에는 엄마 성격이 한 톨도 없는데, 희한하게 둘째는 친정엄마를 쏙 빼닮은 것이다. 문득문득 엄마를 키우는 기분이 들었다. 이해하지 못해 받아들이기로 결론 내린 관계가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엄마한테는 못했지만 자식한테는 더 노력해고 싶어 진 것이다.
하늘에서 이아이가 뚝 떨어진 거라면 난 아이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육아의 힌트가 있었다. 둘째의 힌트는 바로 나의 엄마다. 엄마였으면 어떤 걸 원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엄마 마음을 더 알아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사이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딸이 준 선물 같은 기회다.
첫째의 힌트는 누구일까? 아이는 나와 참으로 많이 닮았다. 동그란 코. 숱 많은 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귀, 개구리처럼 둥그스름한 발가락까지. 외모만 닮기는 서운했는지 성격조차 나와 닮아 있다. 덕분에 첫째를 보면 내 삶을 복기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첫째 육아의 힌트는 바로 '나'다. 친정엄마는 폭격 같은 사랑을 주었지만, 그중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은 적었다. 어린날의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첫째에게 준다. 사랑을 주는 것은 나인데 첫째를 키우며 어쩐지 내가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누굴 닮아 이러는 거지?' 내 뱃속으로 낳았지만 아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순간들이 있다. 엄마와 성향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아이를 이해해 보고자 육아서를 뒤져보고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육아 코칭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모두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육아의 힌트는 가까이에 있었다. 아이는 어느 행성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 아이의 모습을 한 어른이 꼭 존재할 것이다. 답이 없는 것 같고 육아가 너무 힘겹기만 할 때, 아이를 닮은 어른들에게서 힌트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나는 사회화가 덜 된 어린 나를 키우고 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엄마도 키우고 있다. 다 커버린 나에게서, 엄마를 이해해보려 애썼던 시간에게서 나는 육아의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해하려 노력하다 실패했던 엄마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주위 어른들에게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그들이 받았으면 좋았을 사랑을 고민해 보자. 그럼 아이가 원하는 사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