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초록잎들이 어긋나게 달린 줄기가 땅에 기듯 퍼진다. 개구리밥 같은 작은 잎들은 하트 모양을 하고 3개가 짝을 이뤄 달려있다. 끝이 오목한 초록잎 사이로 둥그런 꽃송이가 피어오른다.
네 잎 클로버. 꽃보다 유명한 잎사귀를 가진 토끼풀이다.
5월. 토끼풀이 자란다. 여자아이들은 막 피기 시작한 토끼풀꽃으로 만들기를 한다. 열 살 언니들은 익숙한 듯 줄기 사이에 자리 잡고 토끼풀꽃을 엮는다. 아직 어린 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언니들 주변을 맴돈다. 만들기를 배우려면 토끼풀을 대령해야 한다. 동생들은 언니들 시중을 착실히 들며 눈치를 살핀다. 한아름 들고 온 꽃대를 보고 언니들은 엉덩이를 들썩여 옆자리를 내준다. 곁을 허락한다는 언니들 만의 표현이다. 으깨진 풀잎으로 손가락이 물든 언니들은 그제야 너그러워진다. 언니라 불리지만 여즉 작은 손은 더 작은 동생 손을 잡아 요령을 붙여주려 애쓴다. 꽃밭에 웃음이 돈다. 꽃대는 줄줄이 엮이고 언니와 동생 마음도 그처럼 엮인다.
나도 그사이에 앉아 토끼풀 공예를 시작한다. 꼬아 잡고 꽃대를 연결하면 팔찌가 금세 완성된다. 매듭은 시작보다 어렵다. 줄기를 반으로 갈라 고정시키고 삐져나온 줄기들은 돌로 내리쳐 끊어내야 한다. 마무리는 재주가 필요했기에 동그랗게 이어진 화관은 언니들의 점유물이었다.
만들기가 손에 익자 강가에 피는 분홍빛 토끼풀꽃에 눈독을 들인다. 분홍꽃은 희귀했기에 보석 취급을 받았다. 화관과 팔찌의 시작에 분홍 토끼풀이 있으면 가치는 올라갔다. 똑같은 디자인이 지겨워지면 하얀 꽃 중간에 초록색 잎사귀를 껴넣기도 했다. 하얀 꽃 화관에서 길게 뻗쳐 나온 초록 잎사귀는 걸을 때마다 머리에서 팔랑 거렸다.
반지로 시작한 토끼풀 공예는 팔찌, 목걸이, 화관을 지나 줄넘기 줄까지 만들어낸다.
공들여 만든 나의 작품들은 다음날이면 생기를 잃었다. 땅에서 뽑히는 순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바스락 거리며 부서지는 풀은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토끼풀 화관의 빛남은 봄만큼이나 짧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나는 순간이 아쉽다.
15년 뒤, 여행 중 스페인 어느 작은 마을에서 토끼풀을 발견했다. 머릿속 기억은 흐릿했지만 토끼풀 매만지는 방법을 손이 기억했다. 뚝딱 팔찌 2개를 만들었다. 벤치 주변을 돌며 곁눈질하던 여자아이 두 명이 내게로 다가왔다. 쓱 건네니 주근깨 많은 뺨이 붉어진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는 팔찌 하나로 사라진다.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조잘대던 아이는 몇 분 후 친구를 여럿 데려온다. 어깨를 으쓱하자 눈치 좋은 아이는 담벼락에 마구잡이로 펴있던 토끼풀을 꺾어온다. 어릴 적 동생들이 하던 것 그대로였다. 나는 그때 언니들처럼 엉덩이를 살짝 들썩여 옮겨 앉는다. 곁을 내주자 아이들을 내 옆에 앉아 토끼풀 엮는 걸 배운다. 해가 넘어가던 오후의 시간. 어떤 관광지보다 그날의 풍경이 기억나는 걸 보니. 그날 나는 마음이 풍족했었나 보다.
5월의 어느 날. 두 딸과 함께 국립중앙 박물관에 갔다. 한글박물관으로 가는 길. 3층 석탑 옆 빈자리에 토끼풀이 가득이다. 앞서 걷던 딸이 돌아와 내 팔을 잡고 눈을 반짝인다.
“엄마! 토끼풀이 왜 토끼풀인 줄 알아요? 동그란 꽃이 꼭 토끼 꼬리 같죠? 그래서 토끼풀이래요”
해맑게 웃는 아이에게 토끼풀 반지를 선물한다. 풀 반지 하나에 아이 눈이 커진다. 꼭 토끼 같다. 웃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나도 웃는다.
토끼풀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한다. 나의 5월. 봄과 함께 토끼풀이 따라온다. 도로 옆 얕은 흙길에, 담벼락 밑에, 놀이터 끝에, 하얀 토끼 꼬리 같은 토끼풀이 있다. 아름다운 5월. 걸음 끝에 걸리는 토끼풀처럼 나의 행운도 그렇게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토끼풀 엮는 방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