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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Mar 13. 2022

선택할 수 없는 기쁨



© abderrahmanemeftah, 출처 Unsplash

 

라디오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 선생님 몰래 이어폰을 끼고 들었다. 독서실에 가서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파수를 돌려가며 들었다. 심야 라디오는 더욱 달콤했다. 밤이 늦어질수록 좋은 노래는 많아졌다. 듣고 싶던 노래가 나오면 복권에 당첨된 양 호들갑을 떨었다. 오래 듣다 보면 DJ와 친구가 된 기분도 들었다. 프로그램 개편으로 정든 DJ가 교체되면 어찌나 서운한지 몇 주는 일부러 듣지 않았다. 소심한 복수였다. 친구들이 아이돌 콘서트 따라다닐 때도 난 라디오 공개방송을 찾아다녔다.


 대학시절, 라디오는 인터넷으로도 들을 수 있었다. 손편지 말고도 소통할 수 있는 창이 생겨 반가웠다. 사연을 보내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는지 당첨이 많이 됐다. 받은 상품으로는 콘서트 티켓이 제일 많았다. 내 돈 주고 산 것도 아닌데 친구들에게 생색도 냈고 부모님께 효도도 했다. 몇 번 당첨되니 노하우도 생겼다. 라디오 전화연결도 해보고 초대 방송에 가보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게 되며 라디오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귀에 의지해야 하는 라디오와 달리 영상은 더 자극적이었다. 시각적 즐거움이 넘쳤다. 지나간 방송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치 방송을 몰아 들을 수 있었다. 간절함이 사라지자 재미도 떨어졌다.

음악을 골라 들을  있는 플랫폼도 한몫을 했다. 라디오와 달리 기다리지 않아도 좋아하는 곡만 쏙쏙 뽑아 들을  있었다. 제목만 알면 연속재생 할수있는 음악플랫폼의 매력에 라디오는 점점 잊혀져갔다.


 아이를 낳으며 라디오와는 더욱더 멀어졌다. 아이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말을 했다. 하루 종일 아이 목소리를 들었더니 귀가 피곤했다. 음악도 말소리도 소음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입학하고 내게 시간이 생겼다. 부엌에 설치된 라디오를 들었다. 익숙한 주파수에서 지지직 소리만 들렸다. 지방은 라디오 주파수가 다르다는 걸 이사 와서 알았다. 주파수를 검색해 듣기 시작했다. 지방방송이 나왔다. 라디오에서 듣는 사투리가 신기했다. 지역 음식점 광고에도 사투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다시 라디오에 빠지기 시작했다.


주로 집안일을 하며 들었다. 사연이 재밌는 날에는 걸레질도 힘들지 않았다. 방송에는 여러 노래가 나왔다. 최근 유행하는 노래는 귀에 거슬렸다. 가사도 잘 안 들리고 신나지도 않았다. SKIP 버튼을 누를 수 없어서 잠자코 들었다.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새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데 인색해져 있었다. 내 플레이리스트는 10년 전 노래뿐이었다. 머물러 있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우물 안에 갇혀 지냈나 싶었다.  

 

처음 듣던 노래는 몇 차례 들으니 편해졌다. 그리고 내 플레이리스트는 몇 년 만에 추가 곡이 생겼다. 클래식 방송도 의외로 좋았다. 듣다 자버리는 일도 허다했지만 어떤 곡은 내 마음을 울렸다. 사연도 재밌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다. 나였으면 어땠을까 같이 고민하고 웃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렀다. 가끔 아는 노래도 나왔다. 아주 오래전 노래인데도 입에서 가사가 술술 나왔다. 기억력은 이런 식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오늘도 부엌엔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흐른다. 나와 함께 아침을 시작해 주는 이가 있어 든든하다. 혼자라 심심한 아침. 나는 오늘도 선택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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