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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Oct 08. 2021

나의 첫 학교

전라남도 광주


여기는 전라남도 광주. 8살. 드디어 국민학생이 되었다. 엄마 조언대로 손을 제일 먼저 들어서인가? 말을 조리 있게 했던가. 운 좋게도 첫 반장선거에 당선된다. 엄마는 크게 기뻐했다. 군용 셔틀버스를 타고 한 달 남짓 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문구점은 시장보다 재미났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점심시간도 즐거웠다. 수업 시작마다 하는 "차렷! 경례!" 소리가 신났다.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주말 엄마손을 잡고 공원에 가고 있었다. 3살 어렸던 남동생은 나보다 뜀박질이 빨랐다.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동생에게 질게 뻔했다. 빠른 출발이 내 필승 전략이었다. 눈을 신호등에 고정한 채 준비자세를 취한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발바닥이 간질간질했다. 팟! 빨간불이었던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었다. 엄마손을 놓고 바로 뛰기 시작했다.  




부웅. 갑자기 시공간이 느려진다. 꿈인가 싶다. 퍼억. 비명소리가 들린다. 문득 동생보다 빨리 도착했는지 궁금하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데 전기 나간 듯 기억이 사라진다.




엄마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든다. 택시 안 엄마는 들어본 적 없던 욕을 내뱉고 있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엄마를 달랜다. 동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잡이만 만지작 거린다.  


“엄마~” 작게 부르지만 엄마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어딘가에 도착한다. 아저씨는 택시비는 필요 없으니 어서 들어가라고 재촉한다. 엄마에게 안겨 내리며 아저씨와 잠깐 눈이 마주친다. 희미하게 웃어주신다. 엄마는 동생 챙길 여력도 없어 보인다. 남겨진 동생에게 아저씨가 이야기를 건네신다. 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를 쫓아 달려온다. 동생을 보다 잠깐 잠이 든다.  


곧이어 차가운 쇠 느낌에 눈이 떠진다. 등이 차갑다. 갑자기 귀가 열린 듯 소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내 뇌는 감각을 통합하지 못한다. 보이던가. 들리던가. 느껴지던가. 한 가지씩만 나에게 전한다. 수술복 입은 아저씨가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몰려온다. 고개를 돌려본 엄마 옷이 피투성이다. 엄마가 다친 건가? 눈물이 난다. 일어나고 싶은데 아저씨가 내 어깨를 세게 누르고 있다. 별안간 오감이 열린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모든 감각이 소용돌이친다. 그러다 갑자기 잠에 빠진다.  




다시 깼을  군복 입은 아빠가 눈에 보인다. 병실 바깥으로 군용 차량이 보인다. 산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국방무늬가 하얀 구급차 사이에서 어색하기만 하다. 아빠는 누군가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나는 덜컥 겁이 난다. 싸우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떼지지 않는다. 훈련하다 급히 오셨는지 전투화에 진흙이 말라붙어 있다. 여러 겹으로 얽힌 군화 줄이 지네 다리 같다 생각한다. 지네가 아빠 바지를 타고 올라가면 어쩌지 잠시 걱정이 된다. 흘러가던 생각은 생경한 느낌에 끝이 났다. 돌린 시선의 끝에 동생이 보인다.  다리를 만지고 있다. 그제야 다리를 본다. 검지 손가락 두께의 쇠막대기가 허벅지를 통과해있다. 막대로 고정된  다리엔 깁스가 둘려있다. 그리고 ‘자로 고정되어 공중에 매달려있다. 매달린 다리는 무거운 추와 무게를 맞추고 있다. 동생은 공중에 매달린 다리를 밀어 흔들어 보인다. 재밌어 보이는데 내손은 다리까지 닿지 않는다. 동생에게 무섭게 인상을  보인다. 말썽꾸러기 동생이 웬일인지 순순히  말을 듣는다.  


손을 모으고 땅만 보던 아저씨가 돌아간 뒤 아빠가 내게 말을 건다. 혼이 날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상황판단을 해보려 아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빠 눈가가 촉촉하다. 표정을 고심하다 하릴없이 싱긋 웃어본다. 아빠도 따라 웃는다. 나는 비로소 안심한다.  




나는 그해 여름을 병원에 묶인 채로 보냈다. 지금은 입원을 기억할 사진 한 장 없다. 엄마에겐 잊고 싶은 잔인한 계절이었나 보다.  


30년 전 일. 부모님조차도 사고 기억을 잊고 산다. 모두 잊은 그 사건을 내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소한 차이지만 나는 안다.


나는 두 다리의 굵기가 다르다. 바르지 못한 걸음걸이는 하이힐로 핑계를 대곤 한다. 허벅지에는 쇠막대가 관통한 흉터가 엄지손톱만 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만 아는 비밀 훈장이 사고를 기억한다. 그건 꿈이 아니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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