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아빠 어디 가셨어?”
“푸대! 푸대! 아빠 푸대 갔어요!”
나는 4살. 이곳은 탄탄 강 옆 푸대 (한탄강 옆 부대). 경기도 연천군이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 중이다. 엄마 배가 커다랗다. 뱃속에 동생이 있다 한다. 제왕절개로 날 낳은 탓에 동생도 수술로 나와야 했다. 휴일 지나 수술 날짜가 잡혔다. 아카시아향으로 가득했던 5월의 어느날. 동생은 연천군에서 태어났다.
고모와 큰엄마가 동생을 보러 병원에 왔다. 눈치가 빤 했던 나는 한 명씩 옥상으로 부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예쁜 표정과 말투로 친척들을 회유한다.
“꼬모. 엄마가 아기랑 집에 간데? 나는 고모가 데려갔으면 좋겠어.”
고모 다음은 큰엄마다.
“쿤엄마. 아기 예쁘지요? 예쁜아기 집에 데려가세요~”
어른들 반응이 쉬원찮다. 아기 팔기에 실패한 나는 엉엉 운다. 아기가 집에 오면 안 될 것 같은데 설명할 길이 없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른들은 계속 아빠 어디 갔는지 물어온다
“푸대!! 푸대 가쒀요오!!!” 우는 내가 어디가 웃기는지 고모와 큰엄마는 배를 잡고 웃는다..
동생은 얼굴이 하얗고 동글동글했다. 귀는 부처님 귀같이 커다랗고 입술은 빨갛다. 외갓집에 시주하러 오신 스님께서 마당에서 놀고 있는 동생을 보고는 시주는 됐고 관상을 봐주겠노라 한적도 있다.
“귀한 상이여~ 복이 가득허네. 큰일 할 거여.”
양쪽 집안 제일 인물이었다. 할머니가 마당에 앉아있는데 멀리 보이는 산에서 호랑이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할머니 코앞까지 왔다는 태몽. 목에 금방울을 두른 황소가 외갓집 문턱을 넘어 성큼성큼 들어오더라는 외할머니의 꿈. 설화 같은 태몽을 가진 아들은 살이 붙으며 더 예뻐졌다.
엄마가 동생을 포대기에 업고 마을을 나서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보름달 마냥 환한 아들이라며 한 마디씩 했다. 첫째 때는 듣지 못했던 칭찬이었다. 첫째딸은 분홍 옷을 입혀 커다란 핀을 하고 가도 아들이냐 물었다.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고도 칭찬거리를 찾지못해 “아가가 피부가 참 좋네” 해서 엄마를 폭소하게 만들었던 터였다. 둘째는 달랐다. 엄마 어깨가 으쓱 했다.
할아버지는 아기부처님 같은 남동생을 유난히 사랑하셨다. 이름도 고심해 지어주셨다. 일 년에 한 번 보기 힘든 막내 손자여서 더 귀했을까. 나랏일 하는 사람이 되라며 (할아버지 최고의 찬사였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옥상에서 사람들을 꾀어내며 아양을 떨던 내 질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생은 내게도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아기는 곧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누나" 가 되었고 우리는 비로소 네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