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고 있다.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집 주위를 에워싸고 아침이면 밭으로 일 나가는 이웃들이 골목에서 인사를 나눈다. 버스정류장은 논과 밭이 늘어선 길을 15분 정도 걸어가야 하고 30분에 한 대씩 마을버스가 온다. 행여 버스를 놓치면 다시 30분을 초록 들판에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하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다. 어느 날 번뜩 귀촌을 결심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그저 이곳에서 태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삶에 매력을 느껴버린 나머지 자연스레 시골살이가 되었다.
시골에서의 삶은 귀찮은 점이 꽤 많다. 우선 따뜻한 계절이면 마당에는 풀이 한가득 자라난다. 다 같은 식물인데도 풀은 특히 생명력이 강하다. 뽑으면 올라오고 또 뽑으면 또 자란다. 도대체 흙속에는 얼마나 많은 풀 씨앗이 파묻혀 있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름 치열하게 벌인 풀 뽑기와의 사투 끝에 내린 결론은 그냥 풀을 존중하기로 했다.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하는 친구로 말이다. 풀로 우거진 마당이 식물탐험의 재미가 있지!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계절이 바뀌어 날씨가 추워지면 이번엔 집을 돌보는 귀찮음이 필요하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추위로 인한 문제가 많이 생긴다. 대부분은 수도 관련한 문제이다. 추위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 수도가 터지기도 하고 수도 호스에 감아놓은 보온재가 낡아 떨어지는 경우도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미리 대비를 해두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는 계절이 오면 어슬렁어슬렁 집 주위를 살펴야 한다. 앞마당과 뒷마당을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집의 소리를 듣는다. ‘피시시~’ 어딘가 수상한 소리가 나면 집수리 모드에 돌입해야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그것으로 안도한다. 안부를 묻듯 집을 돌보는 세심한 정성이 시골집에서는 필요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다. 바로 동물들이다. 사람과 자연이 벗 삼아 살아가는 환경이다 보니 동물들이 많다. 떠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 거기다 쥐와 두더지도 신경 써야 한다. 우리 집은 대문이 항상 열려있어 동물들의 출입이 자유롭다. 그러다 보니 마당 한구석에 푸짐하게 싸놓은 개똥치우기는 기본이고 밤만 되면 창문가 앞에서 앙칼지게 울어대며 벌어지는 고양이들의 영역 지키기 난투극은 너무 흔하다. 거기다 뭐든 갉아버리는 쥐 때문에 마당에 아무것이나 놔둘 수가 없고 나무 아래에다 구멍을 뻥뻥 뚫어놓는 두더지까지 마음을 성가시게 한다. 이렇듯 크고 작은 일상의 번거로움이 시골에는 가득하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나는 시골이 좋다. 조용해서 편안하고, 복잡하지 않아 마음이 느긋해진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자라고 있는 식물은 그저 기분 좋은 행복이며 아무 데나 걸터앉아 쉬기에도 좋다. 잠옷 차림으로 마당에서 벌이는 풀숲 탐험은 그야말로 여유의 끝판왕이랄까. 도시의 번잡함은 마음을 삭막하게 하지만 시골에서의 번잡함은 그 사이사이 꿀맛 같은 초록 휴식들이 숨어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급한 마음으로 뛰어가다가도 초록빛으로 넘실대는 벼 밭 앞에서 금세 행복해지고, 조용한 골방에서 사투를 벌이듯 그림 작업을 하다가도 지친 마음 달래려 시골길을 걸을 수 있으니 말이다. 평화로운 시골의 순간들이 곁을 지켜주기에 든든한 삶이다.
창작을 자극하는 원동력의 감정은 다양하다. 고통, 사랑, 내면의 혼란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영감의 원천이 있다. 많고 많은 감정 속에 이끌리듯 선택한 나의 창작 감정은 '초록의 편안함'이다. 풀벌레 소리로 가득한 한적한 시골길, 파밭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조용히 흐르는 밤의 달빛들이 말을 걸어오면 그림으로 응답하려 노력한다. 어느 한적한 시골 골방에서 그림과 글로 조용히 쌓아 올리는 감성촌일상이다. 언젠가 이 작고 조용한 감성촌일상에 놀러 올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촌일상을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날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