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앉아 뽕잎차 한 모금 홀짝
도시를 채우던 카페가 이제는 시골에서도 쉽게 보인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익숙하게 지나다니던 도로가에 하나둘 카페들이 들어서고 같이 자전거 타고 학교 가던 친구네 집이 카페가 되어버린 곳도 있다.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카페, 가정집을 수리한 카페, 플라워 카페, 찐빵 파는 카페, 높게 지은 비닐하우스 속에 식물원을 그대로 재현한 카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궁금한 마음에 나도 카페를 가보았다. 다른 이들이 느끼는 것처럼 휴식을 얻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숨어있는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드넓은 초록 풍경이 내다보이는 통유리 카페에서는 그저 탄성을 내질렀고 화이트톤 벽면에 목재가구로 공간을 꾸민 카페에서는 고즈넉한 멋에 취해 사진을 마구 찍었다. 열대 식물로 가득한 카페에서의 차 한 잔은 이곳이 정말 카페가 맞는지 어리둥절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멋지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카페를 많이 찾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카페 속에 휴식은 없었다.
카페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쩐지 불편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너무 세련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항상 촌에서 지내다 보니 너무 세련되면 꽤나 어색함을 느낀다. 밥값과 비슷한 차 한잔의 가격 때문인가? 부담되긴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이해한다. 이런 작은 이유들이 아니라 좀 더 결정적 이유가 있다. 어떤 불편함이 나를 카페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기억 속의 카페를 찬찬히 둘러보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계속 그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있지 않은 듯 느껴지는 한 가지. ‘벽’이다. 카페는 벽과 벽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아무리 예쁘게 꾸며진 카페더라도 공간과 공간을 가로막고 구분 짓는 벽이 빠질 수는 없다. 푸르게 펼쳐진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 들판과의 연결을 끊고 단절시켜 벽을 쌓은 뒤 카페가 탄생한다. 나는 그 안과 밖을 구분지은 경계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림 작업을 하기 위해 항상 ‘방’이라는 벽 사이 공간에서 머물다 보니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고 싶을 때에는 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것도 앞을 가로막지 않는 열린 곳에서 나는 비로소 휴식을 떠올린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버드나무 아래에 휴식이 있고 유유히 흐르는 강의 반짝이는 물결 속에 휴식이 있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과 길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는 곳에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성미가 ‘카페는 어쩐지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카페 불편증’의 이유를 알게 된 이후로 카페로 향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휴식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카페는 가지 않는다. 휴식은 우리 집 마당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마당으로 내려가는 낮은 계단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 그곳이 카페가 된다. 날씨가 좋으면 파란 하늘 마음껏 올려다보는 하늘 카페가 되고 고양이가 스윽 다가와 애교를 피우면 고양이 카페가 된다. 마당 한편에 거대하게 자란 알로카시아와 하늘거리는 보랏빛 방아꽃의 은근한 조합은 식물 카페에 온 듯한 기분도 안겨준다. 상시 오픈이라 이용시간에 제한이 없고 부드러운 바람과 맛있는 풀향의 뽕잎차가 무한 리필된다. 어떤 제한도, 단절도 없이 즐기는 나만의 계단카페. 꼭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만이 카페일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그저 자유롭게 걸터앉아 편안함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괜찮다. 다만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나만을 위한 카페를 알아보는 마음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촌일상을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날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