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斷想

내가 배 고프니 박은 살찌고

by 김남웅




바람이 해를 몰고 서산을 넘으면

지난 여름 가뭄으로 허기진 박들이

낡은 지붕에 옹색하게 달려있다


아직 덜 익은 초승달 하나

갈바람 타고 지붕에 앉으니

배고픈 박 하나 달을 삼키며

둥실 부풀어 오르고


초승달을 찾으러 온 밤 별

밤이슬에 젖어 지붕에 내리니

배고픈 박 하나 밤 별을 삼키며

방긋 환하게 웃는다


고등어 한 마리 시래기 된장국에

박은 초승달을 뱉고

참나물과 감자전에

밤 별을 뱉고

구수한 숭늉 한 그릇에

내장을 비운다


박 넝쿨 아래서 밥을 먹는다

내가 배가 고프니 박은 살찌고

내가 배가 부르니 박은 야윈다


박 넝쿨 아래서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내가 마음을 비우니 달은 보름이고

내가 마음을 채우니 달은 초승이다


야위고 초승이니 내가 살고

살찌고 보름이니 네가 사네





(2016년 8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