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斷想

오이가 쓰다

by 김남웅





달이 탱글탱글 익어가는 밤


오십 년 구절구절 시큼한 몸을 이끌고

달이 서너 개 조용히 내려앉은 개울에서

얼굴이며 팔이며 다리를 씻다가

등짝 어딘가 닿지 않는 곳처럼

그 누구도 닿지 못하는 마음의 모서리

그곳에 이생의 욕심은 늪으로 무성해

생각의 달빛을 순간 먹어버리는 것이다


다 내려놓아라

다 벗어라

세상의 욕심이 두께로 쌓인 옷 벗고

가릴 것 없는 처연한 몸뚱어리로 서서

몸을 뒤적이며 마음을 헤집어 씻으니

개울가 오이가 한 뼘이나 자랐다


이튿날 점심

맷돌에 곱게 갈린 콩 물에 국수를 넣고

개울가 오이 하나 채 썰어 넣으니

콩국수의 고소한 맛은 없고

오이 맛이 쓰다

아주 죽을 맛이다


“어머니 오이가 써요”

“빨가벗고 오이 밭을 지나가면 오이가 쓰단다”

알몸으로 벗은 욕심이

달빛에 씻은 욕심이

오이, 네 속으로 들어갔구나


어머니 미안해요

그냥 먹어요



(사진출처 : http://insan.tistory.com/entry/%ED%86%A0%EC%A2%85%EC%A1%B0%EC%84%A0%EC%98%A4%EC%9D%B4)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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