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내 마음을 물들이다. (2015년 8월)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린 울릉도 후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태하등대에서 바라본 태풍감과 현포항과 공암, 송곳봉을 잇는 해안선 풍경을 꼽는다.
태하등대에 오르면 누구나 그 풍경에 매료되고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에는 꼭 가보리라 다짐했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에 태하항의 모노레일 탑승장에 도착하여 50분을 기다린 후에 모노레일에 탑승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솔길을 따라 태하등대에 이르러 지정된 곳에서 같은 배경에 인물만 바뀌는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아서 걸어서 태하등대까지 오를까 생각했었다.
걸어서 올라가면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모노레일에서 볼 수 없던 것들도 만나게 되어 훨씬 더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두 아들 녀석의 눈치를 심히 보다가 다음으로 미루고 모노레일을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정원 20명을 꽉 채우고 급경사로를 올라간다.
언덕 위 승강장으로 오르며 유리창으로 태하항과 주변 해안가의 풍경을 바라본다.
푸른색으로 선팅 된 유리창 때문인지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이 더 어둡고 짙은 느낌이다.
멀리 학포에서 태하로 이르는 길에는 바위들이 앞다투어 자기 모습을 뽐내며 깎아지른 절벽을 만들고 절벽 위에는 나무들이 그 푸르름을 더한다.
사실 난 이번 여행에서 구암의 곰바위부터 시작하여 해안길을 따라 걸어서 태하까지 가고 싶었다.
그 길은 바다와 산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예스러움과 멋스러움이 공존하는 길,
울릉도의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고 대화하는 시간.
한적한 숲길에서 만나는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걷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온 여행이라 빠르고 쉬운 여행법으로 이곳까지 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포기하거나 양보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모노레일 승강장에서 태하등대까지 오솔길을 걷는다.
해안가에 있을 때는 바람이 거의 없었는데 언덕 위 승강장에 내리자마자 땀을 식혀 줄 바람이 불어온다.
지금의 모노레일이 설치되기 전에 음식물이나 짐을 날랐던 장소에 도착했는데 바닥은 낭떠러지 위에 철망을 얹어 놓아서 까마득하게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지지대도 튼튼하지 않아서 여러 명이 올라서면 구조물이 부러질 것 같아서 두렵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해안 경치가 너무 좋아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찍는 내내 가슴이 쫄깃해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한데 왜 서있냐는 눈빛을 마음껏 받을 수 있었다.
멋지다.
승강장에서 오솔길을 따라 태하등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평지와 오르막이 적절히 연결되어 있고 숲이 우거져서 길도 예쁘고 좋았고, 숲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아름답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도 행복해 보였다.
나무계단을 따라 숲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등대가 있는데 하얀색 등대와 파란 하늘의 조화가 멋지다.
등대를 지나쳐 조금 더 내려가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수없이 똑 같은 풍경을 쏟아내던 태하등대전망대가 있다.
드디어 그곳에 섰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면의 바다는 햇빛이 비추어 반짝이고 파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파랗다.
왼편으로는 바위들이 겹겹이 쌓여 제주의 주상절리는 보는듯한 ‘태풍감’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후 5시경 응달로 변하고 햇빛도 직접 닿지 않아서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와 맑고 깨끗한 풍경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분명 아침에 왔으면 그 경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다음엔 꼭 아침에 오리라.
전망대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등대 절벽 아래부터 현포항, 현포항을 감싸고 있는 노인봉과 송곳산,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공암(코끼리 바위)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햇살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는 바다와 구비구비 돌아가는 해안선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다.
왜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했는지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
울릉도를 어러번 여행했지만 이곳에 오른 적은 없었다.
모노레일이 다니기 전이라 이곳까지 오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쪽 끝 작은 섬 울릉도가 주는 기쁨과 감동을 눈을 감고 한참을 서서 느끼고 있었다.
오늘 저녁 꿈에서도 만났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저동에서 배를 타고 삼척으로 나가야 한다.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배를 타고 오가는 이틀을 빼고 3일의 여유밖에 없어서 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내가 여기 있어서 고맙다.
(2015년 8월 4일 - 여행 넷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