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내 마음을 물들이다. (2015년 8월)
나는 백두대간의 첩첩산중, 어디를 보아도 산맥들이 둘러 쌓인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사시사철 산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시고 자라며 그 품안에서 놀았다.
땔감을 할 때도, 더덕이나 칡을 캘 때도, 머루나 다래를 딸 때도 산은 우리에게 그 품을 내어주고 그것들을 갖게 했다.
그래서 바다는 책에서만 지식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어렸을 적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갓집으로 놀러 갔었는데 그때 말로만 듣던 바다를 처음 보았다.
끝이 어딘지, 그 깊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그 넓은 품이 좋았고, 뻥 뚫린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 촉감도 너무 좋았다.
가끔 파도에 밀려오는 미역 따위를 줍는 것도, 빈 껍질의 조개를 모아서 구멍을 뚫고 목걸이를 만드는 것도 좋았다.
안 좋았던 기억도 있다.
멀미가 심했던 나에게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를 넘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해서 거의 초죽음이 되어서야 바다를 볼수 있었고, 내가 놀던 시냇물 보다 몹시 짜다는 것, 외갓집 날씨가 너무 덥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기억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 사라지고 바다가 주는 즐거움과 풍성함을 누리게 되었다.
그 후 사랑하는 사람이 우연찮게도 울릉도 사람이었고 그렇게 바다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와 결혼하기로 하고 경북 후포항에서 오후 6시에 배를 타고 결혼 승낙을 받으러 처음 울릉도를 갔다. 그때는 갑판에 나와서 바람도 즐기고 풍경도 볼 수 있는 느리게 운행하는 큰 배였는데 울릉도까지 9시간이 걸려 새벽 3시에 도동항구에 도착했다.
밤새 오징어 잡이를 하신 아버님께서 새벽에 직접 오징어 회를 만드셔서 이른 아침에 먹었고 3박 4일 지내는 동안 울릉도 곳곳을 함께 여행하며,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투명한 바다에 감동했었다.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 후에 몇 차례 울릉도를 갔었다.
맑고 햇빛이 쨍쨍 비치는 날, 흐린 날,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오던 날, 이런 날 저런 날을 그곳에서 지내며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즐거움,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보았다.
인간이 자기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바위로, 산으로, 푸른 바다로, 그곳에 사는 우리들의 가족들에게 배울 수 있었다.
울릉도에 갈 때마다 욕심이 있어서 이곳저곳을 휘몰아치듯 다닌다.
구경할 것도 많고 사진 찍을 것도 많아서 이동하고 사진 찍고 이동하고 사진 찍고 하는 기계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똑 같은 형태의 여행을 하곤 했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지만 나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전의 행태를 답습했다.
다만 예전 여행에 비해서 아이들이 성장한 터라 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처가 가족 모두가 모일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가지 후회가 남지만 그런 후회들이 다음 여행에 대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다음 여행은 다다익견, 많이 보면 볼수록 좋다는 한계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행을, 주제를 가지고 사전에 충분히 연구하고 떠나는 여행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2015년 8월 5일 -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