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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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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Feb 12. 2020

동대문에서






동대문 밤 9시
세상이 조금씩 잠들 시간에
이곳은 옷을 구경하려는 사람들
옷을 팔려는 사람들이
밤을 낮처럼 밝히는 전등 아래서
경쟁하듯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살아진다는 말과
살고싶다는 말이
3평 남짓 촘촘히 늘어선 옷가게를 따라
발디딜 틈 없이 흘러가는 사람들 사이로
소리없이 퍼져간다
 
포장마차가 늘어선 인도를 따라
여기저기 술판을 벌린 사람들
오토바이에 기대어 담배 피는 사람들
가을바람을 맞으며 쉬는 사람들
누구나 다 가슴 시린 사연 하나 달고
오늘을 살아간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설치하고
30초 동안 동대문의 사진을 찍는다
기와지붕 아래 단청과
나무 기둥과 바위로 만든 성곽
그리고 조용히 내려앉은 나즈막한 빛을 담는다
사진에서 얼큰한 막걸리 냄새와
시큼한 김치와
오징어 바다내음이 난다
참 먹고 싶은 그리움이다
 
동대문을 담고 돌아서는데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 카메라에 담겨
카메라가 묵직하다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걸까
멀리 동대문 상가의 불빛이
우리들의 삶과 눈물같다
 
동대문 시장 어느 허름한 가게에서
옛날 통닭에 단무지 하나 사서
배낭에 넣고 버스를 탔다
이것 맛있을까
오늘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
멀고 아득하다
 
 
*동대문의 정식명칭은 흥인지문 興仁之門 이다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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