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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Aug 16. 2020

09. 인왕산의 여름 (2007. 07. 14)

푸른 하늘, 푸른 나무가 만나서 여름이 익어가는 인왕산





줄기차게 내리던 비

빗자루로 구름을 쓸어서

마당 한구석 쓰레기통에 버리니

해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파란하늘이 활짝 열렸다.


창문을 열었다가 닫기를 여러번

신발을 신었다가 벗기를 여러번

드디어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인왕산으로 간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파란 물이 흘러

내 속을 푸르게 물들이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잎들을 흔들며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다.

 

푸른 하늘과 바위와 나무와

구름과 풀과 성곽과

바람과 햇살과

그 속을 걷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걸어가는 인왕산.


집에서 출발해서 무악재역, 청구아파트를 거쳐

빠른 걸음으로 30분 남짓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범바위에 앉았다.


이렇게 맑은 날

이렇게 먼지하나 없는 날에는

인왕산에 꼭대기에 올라

푸른 하늘과 짙어가는 나무와

탁 트인 서울과 시원한 바람을 본다.


흐릿한 하늘과 뿌연 도시속에서

경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꿈보다 현실에 매인 사람들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쉼과 위로는 주는

인왕산의 품이 좋다.


세상을 많이 사랑하겠노라

그대를 더 많이 사랑하겠노라

하늘에게

나무에게

그리고 나에게 조용히 말하고


해가 질 때까지

바위에 앉아 있었다.





홍제동 풍경. 하늘 가득 하얀 이불이 펼쳐져 있다. 저 푸른 하늘에 누워 바람과 구름과 햇빛이 전하는 말을 듣고 싶다.


인왕산 남쪽에 위치한 봉오리. 언젠가는 저 건물 대신에 아담한 정자가 세워지고 그 곳에서 서울의 풍경을 볼 그날이 빨리 오기를....


등산이란 오르고 올라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는것. 오르고 올라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는 것.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인왕산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제일 먼저 밤바위에 닿는다. 산과 빌딩과 주택과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서울. 이곳에 서면 서울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게된다.


서울의 종로구, 중구, 성북구, 강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 이 사진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까?


처음 서울에 왔을때 서울역에서 내렸다. 당시 대우빌딩과 서울역 고가와 도시를 채운 빌딩에 깜짝 놀랐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무시무시한 서울 속에 내가 살고 있다.


사람들은 왜 저기 작은 초록색 지붕에 집중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에는 정말 많은 집과 가정이 있는데 말이다. 대통령으로 사는 하루보다 내가 사는 하루가 더 행복하다고 확신한다.


같은 방향, 같은 구도로 주기적으로 사진을 찍으면 서울 도심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익숙하고 오래된 것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에 오르면 좋다.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게된다.


컴퓨터와 연결된 작은 모니터 보다, 거실 한켠의 텔레비전 보다 눈에 꽉찬 서울을 보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 가장 확실한 카메라는 눈이다.


나무들이 하늘을 오른다. 한뼘 한뼘 키를 늘릴때 마다 하늘은 움찔 물러선다. 더 이상 크지 않을 때까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자. 꿈을 향해.


사진은 발로 찍는다는 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발로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인왕산을 자주 오르다보면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멋진 풍경을 만난다. 오늘이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찍어 기억에 저장한다. 카메라는 사람 눈에 비하면 아주 허접한 촬영도구다. 어느 사진도 그 날 내가 본 풍경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걸 지금도 느낀다.


검은 바위, 검은 소나무, 하얀 구름, 푸른 하늘. 대비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색의 조화다. 사람도 다르지만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존재다.


바위는 자기의 살로 파고드는 나무를 품고 살아간다. 혈관 속으로 뿌리를 찔러넣고 조금씩 심장으로 다가오는 끈질긴 생명력. 그럼에도 바위는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공존의 세상이다


옛 성곽 위에 새로운 성곽을 얹었다. 둘이 같은 색이 되기 까지 비와 바람과 눈과 햇살을 지나 긴 세월 서로 부둥켜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서울은 얼마나 변할까!


기계로 잘라서 만든 성곽과 울퉁불퉁한 돌을 다듬어 엉성하게 만든 성곽. 어느것이 더 자연스러운가? 기술의 발전은 정교한 돌을 만들지만 완성도는 떨어지는 예술품을 만든다.


인왕산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윤동주 문학관에 이른다. 별을 헤는 밤이 이곳 인왕산에는 없다. 밤에도 환하게 빛나는도심의 불빛이 별빛을 먹어버려서이다. 언제 별을 헬 수 있을까?


성곽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잘라낸 돌을 포크레인으로 산 꼭대기까지 옮기고 차곡차곡 쌓는다. 문명의 발전과 아름다움은 비례하지 않는다. 옛것이 좋다. 


7월, 어떤 나무에는 잎들이 없다. 푸르러야 할 가지는 앙상하게 마랐고 핏기가 사라져가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롯이 인왕산을 지키고 있다. 저런 나무가 정말 살아있는 나무다. 


나무도 하늘도 집과 건물도 그대로인데 나는 매일매일 다르다. 기분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니 내가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도 달라진다.


처음 서울에서 집을 구할 때 독립문, 무악재, 홍제, 녹번을 거쳐 불광동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길에 무악재역 부근에서 집을 구했다. 그렇게 정착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가까이 가면 오래된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이 이어지는 서촌 일대. 경복궁이 조선시대 궁궐의 웅장함을 보여준다면 서촌은 민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역사는 서촌에서 쓰여진것 아닐까.


한강 너머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붉은 태양. 기차바위에서 노을을 바라보면 그 황홀한 빛에 마음을 빼앗긴다. 멀리 한강, 김포, 강화도는 노을이 되고 그림이 된다.


인왕산 정상모습. 기차바위를 지나 홍제역 가는 길. 이제 막 산을 오르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뿌듯하다. 그 사람이 만나고 느껴야 할 시간들을 먼저 경험했다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 안산이 보인다. 처음에 안산이 간다고 해서 경기도 안산시에 가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 이름이 안산이다. 말의 안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안산(鞍山)이다


우린 많은 시간을 땅을 보고 살아간다. 세상일에 매이다 보니 하늘을 볼 기회가 없다. 오늘은 나무의 기둥을 따라 펼쳐진 가지의 끝에 달린 하늘을 본다.


인왕산은 소나무가 많지만 꽃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꽃을 만나면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파란 하늘과 주황색 꽃잎이 잘 어울린다. 


가끔 구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늘 높이 올라 나무와 새와 빌딩과 사람들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되어 날아갈 수 있다면 오히려 오늘이 그리울 것이다.






(2007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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