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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Aug 22. 2020

10. 인왕산의 여름 (2007. 08. 25)

성벽과 하늘이 만나는 곳






인왕산에 대한 사진과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어쩌다 한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언제라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내 삶의 주변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늘 보이고

기차바위에 사람이 있는지

성곽을 따라 정상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지

산 정상의 날씨는 맑은지 흐린지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왕산을 넘어온 햇빛에 아침을 열고

인왕산을 건넌 구름에 우산을 준비하고

인왕산을 감싼 바람에 외투를 챙기는

내 삶의 가장 가까운 놀이터이자

힘들때 위로와 쉼을 주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만나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고

언제나 넓은 품으로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보다 산에 대해 조금 더 알고

깊은 속살까지 다 보았기 때문이다.


운동 삼아 다녀오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여유를 갖기 위해 다녀오고

비가 내리고 날씨가 화창해 지면

난 배낭에 물 하나 넣고

아주 오래된 카메라를 매고 다녀오는

나의 흔적과 기억이 머문 공간이기 때문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나면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나뭇잎이 우는 소리가 좋았다.


구름이 하늘을 덮은 날에는

바위에 누워 구름을 보면 행복했고

파랗고 투명한 날에는

서울 도심의 속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소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어 좋았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얗게 지워버린 세상의 풍경이 좋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입고 있는 옷이 달라서 좋고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고

시선의 맛이 달라서 좋았다.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생기는

우리의 삶과는 다르게

묵묵히 하늘을 지키고 있는

그 성실함과 근면함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인왕산에 간다.




종로구 풍경. 지난번에 찍은 사진과 무엇이 다르냐는 아내의 말에 내 마음과 느낌이 다르디고 답한다. 산은 변한게 없지만 나는 매일 매일 변하고 달라진다.


청와대, 경복궁 풍경. 하늘에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듯 많은 사람이 내곁을 지나갔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의미일까? 우연히 지나간 어떤 사람 중 하나일까?


남산과 중구 모습. 동네를 하나 하나 살펴본다. 슬프고 기쁘고 행복하고 우울했던 기억속의 장소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경복궁&종로 풍경. 어릴적 하늘 그림에 늘 하얀 구름을 그렸다. 나도 늘 당신을 함께 그린다. 구름없는 하늘이 외로운 것처럼 당신 없는 나는 외롭다. 


북한산 아래 평창동은 인왕산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그냥두었다면 아마 문수사 아래까지 집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내 삶은 나에게 맡기듯 산은 산에게 맡기자. 서로 침범하지 말자.


성곽에는 추락주의라는 팻말이 보인다. 지위가 높으면 추락에 주의해야 한다. 낮은 곳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떨어진다.


성곽과 전봇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공존한다. 성곽에게 전봇대는 불빛을 밝혀 주고, 전봇대에게 성곽은 가장 든든한 지지대이고 친구다.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다.


인왕산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창의문을 지나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으로 만들어졌을까? 보는 즐거움 보다 만들기 위한 희생에 감사하자.


인왕산 바위들은 소나무 하나씩 품고 산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에게 소나무는 친구다.


홍제동의 모습도 주택에서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있다. 주민 중 어려운 사람은 동네를 떠나고 살만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안산 약수터에 노인들이 사라지고 한산해 진것도 이런 이유다.







(2007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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