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과 하늘이 만나는 곳
인왕산에 대한 사진과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어쩌다 한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언제라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내 삶의 주변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늘 보이고
기차바위에 사람이 있는지
성곽을 따라 정상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지
산 정상의 날씨는 맑은지 흐린지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왕산을 넘어온 햇빛에 아침을 열고
인왕산을 건넌 구름에 우산을 준비하고
인왕산을 감싼 바람에 외투를 챙기는
내 삶의 가장 가까운 놀이터이자
힘들때 위로와 쉼을 주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만나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고
언제나 넓은 품으로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보다 산에 대해 조금 더 알고
깊은 속살까지 다 보았기 때문이다.
운동 삼아 다녀오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여유를 갖기 위해 다녀오고
비가 내리고 날씨가 화창해 지면
난 배낭에 물 하나 넣고
아주 오래된 카메라를 매고 다녀오는
나의 흔적과 기억이 머문 공간이기 때문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나면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나뭇잎이 우는 소리가 좋았다.
구름이 하늘을 덮은 날에는
바위에 누워 구름을 보면 행복했고
파랗고 투명한 날에는
서울 도심의 속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소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어 좋았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얗게 지워버린 세상의 풍경이 좋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입고 있는 옷이 달라서 좋고
보여주는 모습이 다르고
시선의 맛이 달라서 좋았다.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생기는
우리의 삶과는 다르게
묵묵히 하늘을 지키고 있는
그 성실함과 근면함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인왕산에 간다.
(2007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