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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Aug 23. 2020

11. 인왕산의 가을 (2007. 10. 20)

사람들의 빛으로 익어가는 인왕산의 가을




인왕산은 한국의 다른 산처럼

계절마다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는 봄은

알록달록 화사하고

파란빛 나무잎들로 채워지는 여름은

푸릇푸릇 싱그럽고

자기 몸을 불태우는 가을은

울긋불긋 아름답고

잎들을 쏟고 추위를 준비하는 겨울은

싱숭생숭 앙상하다


열대 국가처럼

일년 내내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면

계속 같은 색깔을 유지하고

꽃이나 열매가 계속 달려있다면

계절이 주는 기쁨은 줄어들 것이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달리고

가을볕에 익어 고개를 숙이는

한국의 계절이 인왕산에도 있다.


제일 많은 소나무는 푸른빛이 마르고

성곽 돌틈의 넝쿨은 붉게

나무의 잎들은 노랗고 붉게

잎마다 햇빛에 말라 비틀어지는

자기의 색을 바꾸고 겨울을 준비하는

인왕산에도 가을이 왔다.


가을은 인왕산을 등산하기 아주 좋은 계절이다.

따갑지 않은 햇살을 가르고

성곽을 따라 범바위에 오르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땀은 사라지고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상쾌함이 밀려온다.


사람도 가을이 되면

얇은 옷을 정리하고

두꺼운 겨울 옷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무들도 가을이 되면

입었던 옷들을 내려놓고

가장 가벼운 몸으로 겨울 앞에 선다.


곤충의 먹이로

병의 흔적으로

비와 바람이 지난 기억으로

나뭇잎 마다 하늘을 향해 구멍이 났다.


구멍에 비친 가을볕이 반짝이고

구멍에 비친 하늘이 푸르면

인왕산도 자기의 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가을로 간다.


인왕산을 걸어

나도 깊은 가을로 간다.




인왕산에 있는 초소. 철망으로 둘러쌓여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쓸어담은 빗자루가 기다리고 있다.


푸르던 넝쿨도 붉은 색으로 변한다. 색깔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가을볕에 몸도 말라서 언젠가 잎들을 쏟고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풍요로운 가을에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


돌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잠깐씩 흘러오는 빗물을 빨아들여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험난한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게 오른 인왕산의 끝. 이 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한번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누구나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정상에 서게 된다. 인생도 그와같다. 


경복궁의 색도 노랗게 변해간다. 경회루(중앙) 지붕을 초록색 망으로 씌워 놓았다. 봄과 함께 새로운 경회루로 변화하기 위해 공사중이다. 
정상에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나무판을 깔아 놓았다. 그냥 바위에 앉아서 쉬어도 좋은데 이걸 왜 깔았을까 생각했는데 몇년 뒤에 사라졌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


억새 너머 효자동. 효자'(孝子)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때 학자 조원(趙瑗)의 아들인 형제 희신과 희철이 효자였다 하여 쌍효잣골 또는 효곡(孝谷)이라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범바위에 서서 서울을 바라본다. 눈 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당당한 주인공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살고 있으니 우리는 위대하다.


사람들의 행렬이 정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은 꿈이고 희망이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고, 어던 사람은 행복을 향해 올라간다. 


성곽을 따라 범바위로 오르는 계단. 이 계단을 오르면 서울이 발 아래 펼쳐진다. 바위 위에 앉아서 바라보는 야경은 정말 아름답다.


정상으로 가는 긴 계단을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깔딱고개 쯤 되는 곳이다. 지나온 길보다 남은 길이 짧으니 힘내서 오르면 곧 정상이다.


바위에도 울긋불긋 가을꽃이 피었다. 바위 사이에 뿌리를 넣고 적은 영양분으로 잘 살아 가을을 맞았다. 많고 적음보다 끝까지 숨쉬고 살아있음이 더 중요하다.  


계단 가운데 흰줄을 무슨 의미일까? 좌측, 우측 통행일까? 아니면 정상으로 가는길을 이어주는 표시일까? 함께 가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2007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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