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 시선을 맞추고 봄의 속삭임을 듣자
인왕산이 깨어난다.
하나씩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봄이라는 신호에 한꺼번에 깨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키를 한뼘씩 키우며
푸르름을 향해 걸어간다.
노란색 꽃 노란색 피가 흐르는 애기똥풀
초록색 새순을 하늘로 밀어올리는 소나무
하얀 꽃망울을 봄바람에 터뜨리는 벚꽃나무
달빛 깊은 밤 노란 꽃잎 움트는 개나리
하늘을 가리는 나뭇잎이 조롱조롱 열리고
이름모를 풀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희고 노란 꽃들이 태양에 반짝이는
이곳은 인왕산이다.
겨울을 지나 봄에 만난 인왕산은
그 빛이 푸르고 환하다.
헐벗고 무채색이었던 식물마다
자기 고유의 색으로 갈아입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너희만 예쁜 것은 아니다.
나도 너희만큼 아름답다.
너희가 사는 세상만 바라보지 말라.
시선을 돌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봐라.
봄바람에 너희만 설레는 것 아니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나는 떨린다.
봄비에 너희만 감성에 젖는 것이 아니다
비가 닿기만 해도 내 마음이 촉촉하다.
그러니
너희가 사는 세상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관심을 보여달라
그렇게 말하는 인왕산의 속삭임을
그렇게 말하는 봄의 노래를
귀로 듣고 마음에 담으며
기차바위를 지나
하늘에 닿은 정상으로 간다.
(2008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