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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Aug 29. 2020

14. 인왕산의 봄 (2009. 03. 07)

아들과 함께 낮달이 머무는 기차바위를 지나며






인왕산의 봄은 아직 이르다.

봄이 오기엔 아직 뿌연 황사가 산을 둘러싸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배낭에 음료수와 간식 조금을 챙기고

집을 나서서 인왕산현대아파트를 지나

인왕산 정상으로 향한다.


호젓하게 혼자가는 길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계획하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면서 내 자신이 잘 살아왔다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라고 위로하고 칭찬하는 시간이다.


새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고

바람부는 소리며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진달래며 개나리 꽃을 보고

소나무가 건네는 얘기를 듣는 힐링의 시간이다.


내 속의 내가 아프지 않은지 물어보고

내 속의 내가 외롭지 않은지 물어보고

귀과 눈과 마음을 열고 내 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는 경청의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들과 함께 인왕산에 올랐다.

아들과 함가는 길은

아들의 깊은 내면에 쌓인 고민을 들어주고

아들의 삶을 짓누르는 무게가 무엇인지 들어주고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는 시간이다.


그토록 보기 힘든 아들의 눈을 바라보고

변성기를 넘어가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나 만큼 훌커버린 아들의 모습을 느끼는 시간이다.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마음은 서로 다른 집에 살기에

같은 마음 속에 살도록 대화하는 시간이다.


나의 아버지는 늘 바빴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과묵했고

자식을 위해 과자 하나 사오는 법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술과 함께 살았고

술에 취하면 자식들을 앉혀놓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아버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고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환경과 조건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고

나 스스로 희생과 포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와 아들의 관계도 그렇다.

한번도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 들어주지 못했다.


입은 자물쇠로 꼭꼭 담그고

귀를 열어 아들의 소리를 듣는다.

아들의 소리에 내 마음에 상처가 나고

아들의 소리에 깊은 고민에 쌓이겠지만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아빠

잔소리 폭탄을 던지지 않는 아빠로 느껴졌다면

오늘의 산행은 성공이다.


아들이 내게 말한다.

"아빠 왜 잔소리를 안해요?"

"아빠 어디 아파요?"

"그런 아빠가 더 이상해요."


최소한 오늘 산행은 성공이다.

뿌듯하다.




[홍제동] 해가 서쪽으로 향해 달려간다. 몇시간 후면 저녁이 될 것이다. 깜깜한 밤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과 함께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기차바위] 밤은 아직 멀었는데 뭐가 급한지 낮달이 기차바위 위를 지난다. 달을 보면서 내 소원도 빌었지만 나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


[기차바위] 멀리서 보면 기차를 닮긴 했다. 바위 위에 바위를 얹어놓았다. 사람이 만들었다면 이렇게 큰 바위를 통째로 쌓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은 위대하다.


인왕산에는 곧지않고 휘어진, 빈약한 듯 마른 소나무들이 많다. 곧고 튼튼한했다면 조선시대와 일제를 지나면서 다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다.


[북한산] 사람들의 옷차림에는 봄이 왔으나 북한산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갈색의 빛이 봄바람을 타고 초록으로 바뀌는 그 날이 그리멀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자.


중학생 아들과 같이 인왕산에 올랐다. 게임 아이템 지급과 게임시간 추가 제공의 주계약과 용돈의 보조계약을 체결의 결과로 아들은 산에 왔다. 자의든 타의든 함께 산에 와서 행복하다.


[경복궁&종로] 봄마다 황사로 뿌옇게 변하는 서울. 제법 먼곳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가 보면 별것 없는데 외국인들은 멋지다고 감탄하는 것을 보면 서울도 멋있는 도시가 분명하다.


[서촌,경복궁] 한류는 서울 구석구석  일본, 중국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는 사진에 보이는 광화문광장, 광화문, 경복궁, 창덕궁, 서촌, 북촌지역이다.


[남산, 중구]고층 빌딩과 남산타워가 서울의 오늘을 보여준다면, 인왕산 성곽은 서울의 어제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 어제와 오늘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 이곳이 서울이다.


[인왕산 성곽] 옛것과 새것이 함께 있는 인왕산 성곽,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색깔은 비슷해지겠지만 돌모양은 다를것이다. 이 사실 또한 한줄의 역사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성곽] 성곽보수공사가 완료된 성곽길을 걷는다. 성곽보수공사는 작은 포크레인이 정상까지 올라와서 작업했고, 근데군데 공사자재를 쌓아놓았었다. 이제서야 깨끗해져서 보기좋다.


[인왕산 정상] 저 곳에 서면 사방 아름다운 서울의 풍경이 보인다. 등산이란 힘듬의 과정을 겪어야 감동과 기쁨이 온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인생공부와 같다.


[안산, 홍제동] 석양이 내린다. 노란빛은 점점 붉은 빛으로 바뀌고 한강이 석양에 반짝거린다. 해가 지기까지 비굴하게 살지 않았으니 잘 살아온 내 자신이 멋지고 대견하다.


[남산,중구] 아들은 남산과 서울 도심을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 보다 더 빠르고 급하게 세상은 변할 것이다.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남산,중구] 대부분 빌딩이거나 아파트다. 미국이나 유럽인에게 고층빌딩과 아파트보다 낮고 특색있는 건물이 더 익숙할 것이다. 조금 남은 공간마저 빌딩에게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나무는 헐벗고 외소하지만 그 모습에서 살아온 세월이 보이고 인내와 고통을 이겨낸 기지가 보인다. 바위와 함께 살아온 나무만큼 나도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소나무는 바위를 뚫고 그 깊숙한 틈에 뿌리를 내렸다. 영양분과 물이 부족하다. 악조건에도 수백년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네가 끝까지 대한민국을 지켜다오.


인왕산에 가면 앉아서 쉬는 공간이 몇곳 있는데 이곳이 그 중 하나다. 탁트인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조화가 되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곳이다.







(2009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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