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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웅 Sep 04. 2020

16. 인왕산 개미마을 (2012. 09. 06)

오랜 기억속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다







인왕산의 북쪽에 개미마을이 있다.

본래 이 곳은 인디언타운이라 불리웠던 곳으로 1950년 6.25 전쟁때 갈곳 없던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동네로 인디언 시절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곳 주민들은 자신들을 인디언처럼 여기는 모습을 무척 불쾌하게 생각했고, 결국에는 마을 이름을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개미마을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서울시에서 1950~60년대의 마을 모습을 보존하기로 하여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달동네 중 하나이다.


낙후된 개미마을을 개선하기 위해 2009년 금호건설이 '빛 그린 어울림 마을'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금호건설의 벽화마을 프로젝트는 낙후된 지역을 아름다운 벽화거리로 바꾸는 자원봉사활동이다. 이날 봉사활동에는 추계예술대학, 성균관대, 상명대, 한성대, 건국대 등 5개 대학 미술전공 학생 128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홍제동 `개미마을` 49가구를 대상으로 `환영` `가족` `자연친화` `영화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등 5개의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집집 마다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는 지금의 개미마을은 홍제동의 관광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개미마을은 홍제역 1번 출구 부근에서 마을버스 7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시작하여 정상과 기차바위를 지나 홍제역으로 내려오다 보면 우측에 개미마을이 보인다.


개미마을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동네다.

기와, 함석, 슬레이트 지붕.

아주 작은 유리창과 벽을 뚫고 나온 보일러 연통.

작은 집과 마당 한켠의 수세 화장실.


깨진 지붕 위 천막

세월이 묻어나는 편지통

마당을 건너는 빨래줄.


녹이 슬어 조금씩 떨어져 나간 처마

속살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벽

연기가 드나들었을 굴뚝.


그렇게 세월에 세월을 더하고

사람에 사람을 더해서

조금씩 궁색해지고 남루해진 동네에


하나 둘 벽화가 그려지고

새와 나무와 꽃과

아이들과 풍선과

선과 면과 색들이 이어져서


벽마다 나무가 자라고

벽마다 꽃이 피고

그곳에 새들이 깃들었다.


잠들었던 오래된 동네에도

생명이 이어지고

시들던 오래된 동네에도

새로운 꽃들이 피었다.


한 기업으로 시작해서 대학생들의 자원봉사로

벽화가 완성되면서

동네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고

많은 발길이 이곳으로 향했다.


생활환경이 좋지 않고

좁은 집구조 때문에 살기 불편하고

다른 동네에 비해 편의시설도 부적하기에

개미마을도 언젠가 재개발로 사라질지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무수한 풍경을

박물관이나 민속마을에서만 볼 수 있기에

개미마을이 오래 보존되기를 바란다.


다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보존이라는 명분에 희생만 강요당하지 않기를

이곳에 사는 것이 꿈이고 기쁨이고

자랑이고 행복이길 바란다.




왠지 그림 속 화분의 식물이 계속 자라서 이 집을 덮을 것 같다. 그리고 벽에 그린 그림처럼 예쁜 집을 짓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큰 창문 두개는 안방과 건너방이고 작은 창문 하나는 화장실인데 그럼 나머지 작은 창문 하나는 무엇일까? 저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창문이 있는 집에 벽화를 그렸을까? 아니면 벽화를 그린 후에 창문을 냈을까? 벽을 타고 해바라기가 쑥쑥 자랄것 같고, 커다란 줄기 들이 지붕까지 올라가 집을 덮을 것 같다.


저기 의자에서 쉬다가 또 쉬엄쉬엄 길을 가고 싶다. 그 길에 꽃을 보고 나무를 보며 걸어서 하늘까지 가고 싶다. 


텅빈 집들은 곳곳이 썩어가고 지붕에는 구멍이 났다. 천막, 합판으로 막아보지만 하늘을 가리기엔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벗어나 도시로 옮기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처마에서 빗물을 빼내기 위해 긴 파이프를 달았다. 그리고 그 파이프 사이 공간을 땅따먹기 놀이를 하듯 노란색 칠을 했다. 이 벽화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그린 것일까?


가스관을 따라 새들이 앉아있다. 저 새들의 노래로 아침을 열고, 저 새들의 속삭임으로 저녁을 닫았을 것이다. 주인이 매일 새들에게 먹이를 주었을 것 같다.


이곳이 마을버스를 타는 곳이고 과거 담배를 팔고 식료품을 팔았던 상점임을 보여준다. 이곳이 세상의 소식을 듣는 소식의 창구 역할을 했을 것이다.


색칠을 하지 않은 벽과 나무틀로 만든 창문, 두꺼비집과 작은 마당의 빨래줄. 벽은 갈라져서 시멘트를 덧입혀 발랐다. 우리 부모의 삶이 그대로 묻어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대문의 초록색은 빛이 바래고 곳곳에 녹이 슬었지만 벽에서 장미가 화사하게 피었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장미는 피어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웃음을 전해줄 것이다.


백설기, 팥떡, 치자떡, 감자떡, 쑥떡... 옹벽에 갖가지 떡을 쌓아놓았다. 매일 아침 아무도 모르게 하나씩 빼내서 맛있게 먹고 싶다. 맨 위에 있는 떡은 사다리가 필요하겠다
해바라기 삼형제가 떡하니 집을 지키고 있다. 눈을 땡그렇게 뜨고 누가 오는지 살펴보고 있다. 왠지 해바라기에 연결하면 휴대폰 충전이 될 것 같다.


하얀 담장에 커다란 버섯과 알록달록 풍선ㅇ이 달려있고 담장 안에는 자식들의 옷이 빨래줄에 널려 햇빛을 보고 있다. 뽀송뽀송, 말랑말랑 촉감이 예쁘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쁘고 슬프고 감동이었던 편지가 배달되었던 우편함. 이 메일과 SNS의 발전은 손편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금은 실업자가 된 나이 많은 우편함.


벽을 따라 넝쿨이 자라듯, 빨래줄을 따라 뺄래가 널렸다. 옷 사이사이 산들산들 바람이 스며들고 엄마의 사랑이 스며들어 화사한 꽃 향기가 난다. 빨래는 사랑이다. 


종이를 이 모양 저 모양 접어서 벽에 붙여놓았다. 작은 구멍가게 앞 의자에 앉아 소주 한병에 담배 한개피 피우던 박영감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는다.


니 건물은 27번이다. 번지로 정리되던 시절에 번호로 정리되던 그 시절. 저 꽃잎이 사라지면 개미마을도 사라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기를.






(2012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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