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를 바르고 꽃무늬를 새긴 나무문 열면
입김이 훅훅 뿜어져 나오고
머리가 띵한 추위가 온몸을 떨게 하는
쓰러져가던 허름한 집은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 올 수 있음이 감사하다
뒤뜰 처마 밑에 호미가 주렁주렁 달리고
툭 치면 삭아서 부서질 나무 사다리와
주인을 잃은 지 오래된 녹슨 리어카
손수 담근 장들로 가득한 장독대
그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할 수 있음이 고맙다
마당에 나와서 집을 돌아본다
마당을 지키던 층층나무, 개두릅나무, 머루순은 없다
굴뚝도 사라지고 참나무 땔감도 사라졌다
오래된 함석 담장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
한겨울 찬바람을 이기고 그곳에 서 있다
사라지고 없음을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피나무로 만든 바둑판과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장터를 오가던 낡은 지게와
듬성듬성 이가 빠진 할머니 사기그릇들
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하는 족보
나의 아련한 그리움을 달래 줄
추억의 도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고향집은 춥지만
내 어릴 적 기억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 안에 어머니의 향기와
풍족하지 않지만 사랑하며 살던
흑백사진 같은 유년의 기억이 있어서 좋다
아직은 어머니가 그곳에 계셔서 좋다
(201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