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성인봉(986m)을 오르다

울릉도, 내 마음을 물들이다.(2015년 8월)

by 김남웅



울릉도 여행을 가기 전부터 성인봉 등산 일정을 세우고 아들들에게 다짐을 받았던 터라

아빠의 강압에 마지못해 아들들이 등산을 하기로 2리터짜리 큰 물병을 두개 꽁꽁 얼리고

홍합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고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 30분

간단하게 짐 들을 챙기고 집을 나서 KBS울릉중계소 앞에 다다른다.

지금부터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
바람에 스치는 대나무 소리가 경쾌하고
벌레들이 부르는 합창이 맑다.
코 끝에 전해지는 공기가 시원하고
나무들의 응원에 발걸음이 가볍다.


성인봉 가는길 이정표, 1.9Km 남았다




해발 986m
설악산(1708m) 등산은 시작점이 해발 6~700m이기 때문에 걸어서 약 1,000m를 오르면 대청봉 정상이다.

처가는 바닷가라서 온전히 986m를 올라야 성인봉에 다다르게 된다.

즉 설악산 등산과 비슷한 거리지만 경사가 급해서 제법 힘든 길이다.
5시 30분,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도록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등산을 혼자 했더라면 어두움과 동물의 우는 소리, 바람 스치는 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을 것 같다.
제법 가파른 산길 때문인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활어가 뛰듯 심장이 뛴다.

산행을 하다 보면 평상시 운동 안 한 표가 팍팍 난다.

10년 전 성인봉을 오를 때 보다 더 숨차고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얼음물 한잔을 들이키고 복숭아를 먹는다.
꿀맛이다.

구름이 발 아래 있다. 멋진 풍경이다.




멀리 동해의 바다에서 해가 떠오른다.
두 아들과 바라본다.
살아온 날이 고맙고 살아갈 날이 설렌다.
내가 살아온 날에 감사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이 행복하고 아름답기를 기도한다.

출렁다리에서 일출을 보다가 드디어 한 부부와 만났다.

우리는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 밝고 환한 얼굴로 같이 일출을 본다.

"아들과 함께 오셔서 좋겠어요." 건네는 인사가 좋다.

안 오겠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함께해 준 아들들이 고맙다.

이른 아침인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수건 한 장이 다 젖었다.

해가 떠 올랐다. 동쪽에서 바라본 해는 감동이다.


성인봉에 오르는 내내 체력과 싸워야 했다.

줄줄 흐르는 땀과도 싸워야 했다.

급경사길을 몇 걸음 못 가서 쉬고, 그럴 때마다 심장이 멎는 듯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 했다.

온몸은 젖어서 땀냄새가 풀풀 나고 소금끼가 옷에 그대로 배어나온다.

그동안 내가 운동한 것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체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걱정도 된다.

잠시 후 등산하시는 분을 세분 더 보았다.

인적이 드문 등산길에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를 또 한번 느낀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 없이 소경으로 벙어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닫는다.

가장 가까이에서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사리과 식물들이 많았는데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죽이 많아진다.

다시 힘을 낸다.



저 뒤에 계신분이 컵라면 한개를 주셨다. 그 맛과 감사함이란...


빽빽한 나무 숲에 가린 산길은 시원하고
산등성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다.
정상에 오르기 전 쉼터에서 부부가 준 컵라면을 나누어 먹는다.
꿀맛이고 잊지 못할 맛이다.

탕수육보다 1등급 소고기 보다 더 달콤하고 화려한 맛이다.

국물까지 모두가 뱃속에 넣고는 두손 불끈 쥐고 소리를 지르며 성인봉에 오른다.


KBS중계소를 출발한지 2시간 30분 만에 성인봉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에 도착해 간다. 화이팅이다.




지금까지 두 번 정상에 왔었는데 안개가 자욱하거나 보슬비가 와서

하늘의 아름다움과 산의 푸르름을 보지 못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와 보슬비를 맞으며 뿌옇게 다가오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은 참 맑고 깨끗하다.

밝고 환하다.
멀리 바다는 안개가 머물러 보이지 않으나 산들은 내게 성큼 다가온다.

이렇게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울릉도를 보게 되는 호사를 마음껏 누린다.


성인봉 정상에 올랐다. 기쁘고 감사하다.


두세 평 남짓 좁은 성인봉 정상에서 바라본 울릉도,

사방으로 산들이 나를 에워싸고 저마다 푸르고 높은 하늘을 이고 있다.

수많은 나무와 풀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어디를 보아도 푸르게 반짝이고

사방이 뻥 뚫려서 바람도 조금씩 불어온다.

성인봉에 오르도록 건강 주신 것, 가족과 함께 올라서 아름다움을 같이 보게 하신 것.

울릉도 여행기간 좋은 날씨 주신 것에 감사했다.

아들들로 정상 등반에 대한 기쁨이나 뿌듯함이 있는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 서게 된 아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성인봉 등반 내내 함께 할 수 있어 고맙다.
이렇게 높은 곳을 함께 등반한 것은 처음이다.
성인봉 등산이 내게주는 의미는 '힘들고 어려운 것을 인내하고 정상에 오르라'는 것이다.


성인봉 정상에 오르니 감동이 스며온다.

힘들고 어려운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다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인생의 성인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생의 백두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 기쁨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고 용기가 될 것이다.

다시 걸어보자, 뛰어보자, 인생의 성인봉에 올라보자.







[2015년 8월 2일 - 여행 둘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