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그곳
캠핑에도 난이도가 있을까?
굳이 캠핑에 난이도를 매긴다면 평범한 30대 여자 사람 입장에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겠다.
1. 비 오는 날의 우중 캠핑
2. 화장실/샤워실이 멀고 청결하지 못한 캠핑
3. 벌레를 많이 만나야 하는 캠핑
우리는 오토캠핑을 주로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빙쉘이 있는 텐트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비가 오면 생활의 범위가 급격하게 제한되어 버리는 탓에 1번의 우중 캠핑은 되도록 안 하려는 편이다. 2번의 캠핑 형태도 피하기 위해 캠핑장을 고를 때 이용 시설도 신경 써서 보고 고르는 편이다. 3번은...이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인지라 그 날의 운에 맡겨야 한다.
아무 데나 텐트 치시면 돼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미뤄뒀던 고난이도의 캠핑장이 하나 있었다. 캠퍼들 사이에서도 용변의 어려움이 있는 곳으로 익히 알려진 캠핑장인데, 그곳은 바로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팔현캠프'다.
왜 이곳이 고난이도인가 하면, 앞서 말한 2번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캠핑 사이트들이 화장실, 샤워실과 멀리 떨어져 있고, 거의 백패킹과 흡사한 캠핑의 형태인 데다가, 별다른 영역 구분 없이 노지에 아무 데나 자리를 잡으면 되는 굉장히 프리한 야생의 캠핑이다.
나중에 가자고 미뤄뒀던 이곳에 생각보다 금방 가게 된 이유는, 이 날은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한 한 캠핑 박람회를 구경 갔었다. 구경을 끝내고 일산이나 파주 쪽 캠핑장으로 가자는 러프한 계획을 잡아뒀었다. 분명 하루 전 까지만 해도 캠핑장들의 예약이 꽉 차있지 않아서 내일 예약해도 되겠거니 하고 마음을 놓았는데 당일에 보니 자리가 없다.
여기저기 연락해봐도 만석이라는 대답만 듣다가 어쩌다 한번 연락해본 팔현캠프에는 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데나 텐트 치시면 돼요'라는 쿨내 나는 안내를 듣고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어서 우리는 남양주로 향했다.
블로그를 통해 대강의 후기는 읽었지만, 아무 데나 텐트를 치라는 게 무슨 말일까 궁금해하면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주인아주머니께 다시 안내받은 바에 의하면, 산(!?) 위로 올라가 마음에 드는 곳에 그냥 자리를 잡으면 된다고 했다. 알려주신 대로 그 산을 올라갔는데, 잣나무로 빼곡한 숲을 보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숲은 고요하고 차분한데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덕에 왠지 모를 활기가 넘쳤다. 원래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한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상상해오던 '캠핑'의 이미지와 가장 흡사한 장면이었다.
여러모로 악조건이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화장실과 꽤 많이 멀어진다. (화장실이라고 해도 이동식 화장실이다...) 샤워실은 입구에 있어서 멀어진 지 오래다. (심지어 샤워실은 세상 열악했다....) 그리고 높은 곳은 전기를 사용할 수도 없다. 여러모로 악조건은 다 갖췄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적당한 곳에 일단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 중고로 구입한 경량 텐트를 자신 있게 펼쳤다. 초록의 배경에 우리의 주황색 텐트가 생각보다 잘 어우러져 기분이 좋았다. 타프를 치지 않아도 우거진 잣나무 숲 속은 충분히 시원했다. 게다가 타프를 치지 않으니 집을 세팅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땀도 별로 안 났다.
가만히 앉아 자연의 소리를 만끽하며, 오는 길에 사 온 닭강정과 맥주로 배를 한 겹 채웠다. 이번 캠핑은 '내키면 가고 안 내키면 말지 뭐'하고 대충 잡아둔 일정이었어서 음식을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집에서 먹다가 남은 오이냉국을 들고 와서 초라한 밥상을 차려 먹었다. 아니, 바리바리 들고 와서 해 먹었어도 개수대가 저 산 아래 있어서 설거지도 못했을 판이다.
시간이 흘러 숲에는 밤의 어둠이 깔렸다. 깜깜해서 대충 저기 구석에다 방뇨를 해도 될 듯했는데, 다들 그렇게 잘하고 계신 듯했는데(...) 나는 차마 용기가 안 나서 남편을 끌고 화장실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다. 심지어 자다가도 화장실에 혼자 가기 무서워서 남편을 깨웠다. 그 덕에 남편은 나와 함께 비몽사몽으로 짤막한 등산을 했다.
그런데 전기를 사용하지 못해도, 설거지를 못하고 그릇을 쌓아둬도, 이동식 화장실이 멀고 불편해도 의외로 그 환경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생각은 역시 마음먹기에 달린 건가 싶기도 하다.
이런 게 감성의 맛!
원래 같으면 캠핑장에서 파는 장작을 구입하거나 아니면 미리 장작을 사서 준비해 가기도 하는데,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캠핑이라 주변 나뭇가지들을 주어다가 좀처럼 쓸 일이 없는 미니 화로에 불을 피우기로 한다.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누구나 하나쯤 들고 다닌다는 앵두 전구도 같이 점화하니까 우리도 감성캠핑 대열에 합류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괜히 뿌듯했다. 우리 캠핑도 생각보다 많이 발전했구나, 점점 익숙함의 형태로 모습을 갖춰나간다.
"우리 여기 또 오자!" 하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선선한 날씨와 잣나무들에 마음껏 파묻혀 놀았다. 에티켓 타임이 잘 안 지켜져서 밤늦도록 시끄러웠던 게 살짝 오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화장실이 멀면 어떤들, 밤늦도록 좀 시끄러우면 어떤들, 그 모든 단점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리는 이 곳 팔현캠프의 매력은 무한대다. 그리고 캠핑은 웬만한 일들을 너그러이 용서하게끔 만드는 무한의 힘이 있다.
숲 속에서 자유를 만끽해보고 싶다면, 그리고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진짜 리얼 캠핑을 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이곳으로 떠나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