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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Sep 25. 2020

내 가슴에서 일어난 불편한 이야기(2)

엄마는 최선을 다했단다


어느 날은 유두에 물집이 잡혔다. 수유하는 게 너무 아프고 무서웠다. 심지어 젖을 먹으러 오는 아기마저 무서워졌다. 아무리 모유가 가장 좋다고 한들, 내가 매일 울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먹이는 모유가 과연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 그만해야겠다.


그날도 조리원에 마사지를 받으러 갔었다.

"원장님 저 단유 할게요"라고 참고 참아오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 명치에 얹혀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스르륵 녹아 사라진 느낌이었다. 원장님은 그간 내가 해온 노력과, 미루어 짐작 가능했을 나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에 나에게 그 어떤 위로도 하지 못하셨고, 그저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토닥해주셨는데, 다시 생각해도 그게 왜 그렇게 슬플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련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고 울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렇게 모유수유로부터의 해방을 선고했다.


커피도 맘껏 먹을 수 있다!




모유도 수도꼭지처럼 잠금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하겠다고 바로 그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모유량이 많은 경우는 단유에도 고통이 수반된다고 했다. 모유수유와 단유, 고통의 총량이 같다는 가정 하에 기약 없이 아플 고통보다 끝이 보이는 짧고 굵은 아픔이 더 낫겠다 싶었다. 나는 흔히 단유 방법이라고 알려진 것들을 빠짐없이 모두 적용해봤다.


직수 중단

유축은 최대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불편감이 사라질 정도로만 해주기

아이스팩으로 열감 식히기

차갑게 냉장해둔 양배추 잎 가슴에 올려두기

카보 크림 바르기

단유 차 마시기

국물류의 음식을 피하고 최소한의 수분만 섭취


모유수유보다 더 바쁘게 단유에 열과 성을 쏟았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만큼 모유량이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조리원을 찾았고, 원장님은 이대로 자연 단유가 어려울 것 같으니 단유 약을 처방받아서 먹어볼 것을 권유하셨다.


물처럼 먹다시피한 단유차


산부인과로 곧장 달려가 약을 처방받았다. 단유 약에도 두 종류의 약이 있었는데, 그중 비교적 부작용이 적다는 약을 처방받아 이틀을 먹고 최소한의 유축과 아이스팩, 카보 크림 등의 보조수단을 병행하며 단유를 진행했다. 보통 이틀이면 젖이 마른다고 했으나 나는 결국 약을 하루치 더 처방받아 드디어 삼일 만에 숨통이 트일 만큼 젖이 말라갔고, 더 이상 유축하지 않아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상태가 됐다.




이 모든 과정은 출산 후 불과 25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100일까지만 모유수유해보자 하던 게 50일 그리고 그다음에는 한 달을 목표로 잡았지만, 나는 결국 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단유를 해버렸다. 단유를 결정하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고, 정답 없는 질문들을 허공에 반복했다.


지금 단유 하면 근성 없고 끈기 없는 실패자로 보이지 않을까?

그래도 한달은 버텨봐야 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진다는데 나에게 버틸 힘이 남아있을까?

모유를 먹여야 면역력도 두뇌발달에도 좋다던데...

나도 모유 안먹고도 건강하게 잘컸는걸...

내가 이렇게 맨날 울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먹이는 모유는 과연 괜찮은걸까?

요즘 분유값도 비싼데 모유 먹이면 돈도 절약할 수 있을텐데...

근데 당장 수유하는게 너무 무섭고 아픈데...

모유 먹이면 젖병 닦을 일 없다는데,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로울 바에 젖병 닦는 수고스러움은 별 것 아니지 않을까?




무사히 단유를 마치고 완분의 길을 택한 내게 지금도 이웃 어르신들은 "모유 먹여야지! 우리 때는 다 참고 짜면서 먹였어"라고 한 마디씩 건네신다. '엄마니까'라는 이유로 모든 걸 참고 감내해야만 옳은 선택이라고 인정받는 걸까? 그렇게 인정받는다고 한들 그 인정은 나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 걸까? '젖'이기 전에 가슴은 내 신체의 일부인데, 내 맘대로 하면 안 되는 건가?


도대체 모유는 무엇이길래 우리는 왜 그렇게 모유수유에 집착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쉽사리 단유를 결정하지 못했던 걸까. 아직도 나에게 모유수유는 풀리지 않는 의문 투성이다. 이따금씩 그 날들의 고통이 떠오르지만, 분명한 건 나는 그 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엄마는 모유가 아닌 다른 방법들로도 네게 충분한 사랑을 줄 자신이 있다고. 너도 분명 젖을 물리며 우는 엄마의 모습보다 분유를 타며 웃는 엄마의 모습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그러니 엄마의 단유를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이다.



모유수유는 결코 강요받아서도 강요해서도 안 되는 선택사항이다. 모성애와 모유수유는 결코 동등하지 않으며, 육아의 주체인 엄마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있어야 아이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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