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모유가 뭐길래
돌이켜보면 나의 임신과 출산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흔히 임신 중 일어나는 이상 사건들을 '이벤트'라고 부르는데 나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아주 좋습니다'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코멘트를 받으며 정기 검진에 다녔다. 게다가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분만으로 7시간 만에 아기를 빠르게 낳았다.
태아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고,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나와 아기가 모두 건강하게만 출산할 수 있다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후 나의 가슴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1도 예상하지 못했다.
임신 30주쯤이던가, 그 무렵 가슴에서는 투명한 유즙이 분비됐었는데 출산을 한 당일 밤, 투명했던 액체가 샛노란 색으로 변해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초유인가 보다. 얼떨결에 출산 당일 밤부터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아기가 젖을 무는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고, 방금 내 뱃속에서 나온 핏덩이가 눈을 감고 내 가슴을 옴뇸뇸 빨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허나 그 사랑스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틀 뒤, 가슴은 급속도로 단단하게 부풀었다. 엄청난 열감과 통증에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그 날 조리원에서 처음으로 받은 가슴 마사지는 충격에 가까웠다. 가슴이 쥐어 뜯기는 건가 싶을 정도의 악력으로 모유를 짜주셨는데, 손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모유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처음 맡아보는 모유의 냄새는 어색했고, 내 신체에서 낯선 액체(?)가 나오는 게 이상했다. 마사지를 받고 몇 시간이 채 안 가서 모유가 다시 차올랐다. 아, 앞으로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거구나.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몇 해 전 건강검진에서 '치밀 유방'이라는 소견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게 나의 모유수유에 걸림돌이 될 줄 몰랐다. 조리원 원장님 말씀으로는, 내 가슴은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조직이 단단한 치밀 유방이라 쉽게 풀리지 않고, 유선이 얇은 편인 데다가 아직 아기가 빠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유가 시원하게 비워질 수 없는 거라고. (=앞으로 너는 계속 아파야 한다는 의미)
가슴이 딱딱해진 상태에서 젖을 물리다 보니 아기는 젖을 깊게 빨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유두에 반복적으로 상처가 났다. 맘마가 자기 맘처럼 콸콸 나오지 않아서인지 아기는 먹다가 종종 울기도 했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울었다.
수유를 해도, 유축을 해도 젖이 제대로 비워지지 않아 가슴은 늘 딱딱했고 아팠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고됬던 조리원에서의 첫 일주일은 눈물바다였다. 남들은 조리원 천국이라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는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펑펑 울면서 아침밥으로 나온 미역국을 먹다가 잠든 일 밖에 없다.
사실은 굉장히 심플한 문제였다. 모유수유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간단히 결정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힘들면 그만하면 되지!' 하고 쿨하게 털어내면 될 일이었다.
"유두 모양도 너무 좋고, 모유량도 많아서 애기가 모유만 먹고도 충분히 살 수 있겠어~"
모유수유를 격려하는 조리원 원장님들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 새끼는 모유로 키워야 한다는 모성애의 일종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시작한 거 끝장을 보겠다는 내 안의 집착과 집념이었던 건지 나는 어쩐지 모유수유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리원 생활, 즉 젖 물리고 젖 짜는 일을 꽤 성실하게 했다. 새벽 유축도 부지런히 했고, 아프면 타이레놀을 먹었고, 유두에는 늘 비판텐을 덕지덕지 발라가며 수시로 직수를 했다. 조리원 선생님들은 사연 많은 내 가슴을 가여워하셨고, 가슴 마사지도 매일 한 번씩 꼭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아기는 조리원 때보다 식욕이 더 왕성해진 건지 계속 젖을 찾았다. 아마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젖을 물린 것 같다. 체력이 도저히 남아나지 않았다. 수유를 하다가 조는 건 기본이고, 수유쿠션을 허리에 두른 채 픽 쓰러져 잠들기도 했다.
게다가 가슴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리원을 퇴소하고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염치없이 조리원에 찾아가 가슴 마사지를 받았다. 조리원 원장님은 힘들고 아프면 언제든 오라고, 그런 나를 내치지 않고 반겨주셨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양질의 모유를 만들어내려면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나는 조리원을 나와 집에 온 뒤로 잘 먹지 않았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은 먹고 싶은 걸 말하면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식욕을 몽땅 잃어버려서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시뻘건 음식들이 식탁에서 사라지고 한 달을 내리 미역국만 먹고 있으려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아마 나는 그때 그렇게 산후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출산 후 호르몬은 제멋대로 널뛰는 데다가, 모유수유는 도저히 혼자 힘으로 해결해낼 수 없었고, 계속되는 가슴 통증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으며,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애먼 남편을 붙잡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매일같이 울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