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겁꾼 Sep 17. 2020

남편의 육아휴직

80일간 함께 싸워준 육아 동지를 위한 헌정글


남편의 의사는 꽤 확고했다. 한 해 앞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 누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육아에 지레 겁먹은 탓일까, 남편은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갓난아기 시절의 육아를 함께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육아휴직에 비교적 자유로운 직종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휴직계를 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기간이야 길수록 좋겠지만, 가계 경제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약 두 달 간의 짧은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유난스럽긴, 나 때는 그런 거 없이도 잘 키웠어"
"너무 멋있다, 육아는 역시 같이해야 해!"


남편의 육아휴직 소식에 주변에서는 두 부류의 목소리를 냈다. 어쩜 이렇게 상반된 온도차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공동이라는 의견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아직 우리는 아빠의 육아휴직을 쌍수 들고 환영하지만은 않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휴직은 생각보다 그리 평화롭지 않았다. 우리의 일과는 크게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일이었는데, 그 행위들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끝났다. 모든 대화와 행동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어느새 단란했던 '둘'은 사라지고 엄마 그리고 아빠만 남았다.


나는 종종 맘카페에서 본 각양각색의 사례들을 열심히 구두로 퍼다 나르며 '이렇게 키워야 한대!'를 주장했지만, 남편은 '그냥 일단 대충 해보자'식으로 육아에 일관했다. 육아에 대한 접근 방법부터, 젖병을 닦는 방법까지, 하다못해 아기의 똥을 치우는 방법까지도 우리는, 아니 엄마와 아빠는 너무 달랐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짤은 결국 남 얘기가 아니었다...


명목은 분명 공동육아였지만,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 껌딱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저녁만 되면 아이는 유난히 나에게 매달리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힘의 균형이 엄마에게 쏠리며 내가 주양육자의 역할을 맡게 됐고, 남편은 그런 나의 의사결정들을 되도록 이해하고 따라줬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아이의 잠투정, 부족한 수면, 충실하지 못한 식생활 등이 겹치며 여느 육아 가정들처럼 생활의 불균형이 찾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집 밖에 나갈 일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알 수 없는 우울감도 커져갔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서로의 예민함은 최대치에 달했고, 우리는 같은 공간에 틀어박혀 매일같이 사소한 언쟁들을 반복했다. 그러다 급기야 어느 날은 그것이 곪고 터져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싸우지 않았을까?"

"나름 각별했던 우리조차도 결국 이렇게 애 하나 보고 사는 현실의 부부가 되어가는 걸까?"

"아이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행복했을까?"


공동육아의 당위성에 대해 거듭 생각했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거듭 비교했다. 아이의 탄생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둘만의 생활이 그립다고 생각했고,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가능하다면 출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때로는 마음과 말이 엇나갔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했다. 같이 울기도 했고, 그러다 눈물을 닦아주기도 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험난한 육아 생활에 둘도 없는 내 편인데 날을 세워 공격할 이유도 방어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아이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2인 가족에서 3인 가족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에 찾아온 몸살을 호되게 앓은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여물어 단단해진 듯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산 전으로 돌아간다면 아이가 없는 삶을 택했을 거라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아이 없는 생활이 상상이 안된다고, 아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보면 우리 둘 다 육아에 약간의 여유도 생긴 모양이다.




남편의 육아휴직은 내일로 끝이 난다. 공동육아로 울고 웃었던 우리의 여름도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더 자게 해 주려고 아이를 조용히 놀아주고 있던 어느 날의 아침,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아파트 단지를 때로는 공원을 돌며 별 것 없는 얘기를 나누던 어느 날의 낮, 아이를 재우고 맥주잔을 부딪히며 이것도 귀엽네 저것도 귀엽네 하며 아이의 사진을 같이 들여다보던 어느 날의 밤.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는 늘 남편이 있었고, 아이의 성장을 매 순간 공유하고 감동하던 우리만의 육아가 있었다.


아직도 걸어가야 할 육아의 길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한참이나 남았지만, 두 달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서, 즐거운 육아를 위해 많이 고민해줘서, 함께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의 육아 동지에게 전하고 싶다.



엄마 아빠랑 함께 보낸 생애 첫 여름,
너도 즐겁고 행복했지? :)
매거진의 이전글 흔한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