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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Dec 31. 2020

진정한 겨울의 낭만, 동계 장박 캠핑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는 따뜻한 방법


정말 오랜만에 쓰는 브런치다.


게으른 변명일지 모르지만, 육아를 하면서 동시에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고, 산더미 같은 빨래와 설거지를 돌보고 나면 하루는 금방 끝나고, 나는 방전되어버린다.


하지만 올해가 가기 전 기필코 글 하나는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작년 겨울에 다녀온, 어느새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동계 캠핑 이야기를 한 번 꺼내볼까 한다.


우리 텐트 살까?


때는 바야흐로 작년 11월, 중고나라를 뒤적거리던 남편은 갑자기 텐트를 사겠다고 했다. 시중에 100만 원가량 하는 텐트를 중고로 20만 원에 팔고 있다나.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 같길래(?) 그냥 맘대로 하라고 했다.


그 날은 산후조리원 투어를 했던 날이었는데, 조리원 상담이 끝나기 무섭게 중고 거래 장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랬더니, 우리 눈 앞에는 20킬로짜리 거대한 텐트가 나타났다.


자녀들이 학교와 학원으로 바빠지며 캠핑을 자주 다닐 수 없어 용품을 처분하신다던 판매자분은 사용하지 않는 전기장판이며 숯이며 우리에게 아낌없이 모두 퍼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드릴 게 없어서 차 트렁크에 있던 고구마 몇 개를 나눠드렸다.

우리가 구입한 텐트는 콜맨 ‘웨더마스터 아스테리온’


우리에게는 겨울철과 비 오는 날에는 캠핑을 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있었는데, 남편은 임신을 하고 난 뒤 그제야 자유로운 캠핑과 잠시 멀어져야 함을 비로소 직감한 건지, 동계 캠핑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일단 텐트는 얼떨결에 장만하게 됐고, 그 후 난로와 기름통 그리고 실링팬까지 구비했다.

사실 나는 저질체력의 임신부였기 때문에 캠핑을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동계 캠핑의 준비부터 실행과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남편이 알아서 도맡아 했다. 남편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 곳 캠핑장에서 한 달간의 장박을 예약했다.

https://kisancamp.modoo.at/?link=5yn9wee7


춥지만 아늑한 우리만의 쉘터


평소의 캠핑이었다면 같이 짐을 옮기고, 남편이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서포트를 하거나 부피가 작은 물건들을 설치하고 꾸미는 잡다한 일을 하며 2인 1조로 움직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남편이 나 없이 혼자서 어떻게 집을 지어놨을지 내심 궁금했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제법 튼튼하고 아늑하게도 잘 꾸며놨다.


이 날은 궂은 날씨 때문이었던 건지 캠핑장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있어도 다들 텐트 안에 꽁꽁 숨어계셔서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다.)


캠핑장에 도착하고 얼마 후 비인지 눈인지 모를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 건지 어쩌다 보니 우리가 여태껏 피해오던 동계 캠핑과 우중 캠핑을 동시에 즐기게 됐다.



난로를 피우고 물을 끓여서 핫초코를 한 잔 마시니 온몸이 따뜻해져 온다. 좋은 노래를 틀어놓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자니 이 보다 좋은 태교가 과연 어디 있을까 싶었다. 뱃속에 있는 아기도 감성에 한껏 젖어있을 것만 같았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바베큐를 포기할 수 없어서 우산을 쓰고 고생스럽게(고생은 남편 혼자 다 함) 고기도 구웠다. 후식으로 난로 위에 고구마도 굽고, 쫀드기도 구워 먹었다.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겨울의 냄새고, 겨울의 맛이다.



야무지게 챙겨간 닌텐도로 게임도 하고, 도란도란 수다도 떨었다. 리빙쉘이 있는 텐트는 처음이었는데, 마치 집 안에 있는 듯한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주는 아늑한 공기가 참 좋았다.


난로를 피우고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아주 중요하다!!!) 미리 전기장판을 켜서 따뜻하게 데워둔 이너텐트 속 이불속에 누우니 추운지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해가 뜨고 아침이 되어서야 난로가 꺼졌는데, 그 무렵 부스스 일어나 다시 난로를 켜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침을 먹으며 병원으로부터 온 문자 하나에 안도했다. 오늘, 이렇게 캠핑장에서 기나긴 임신 생활 중 새로운 또 하루를 평범하게, 혹은 특별하게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했다.





첫 동계 캠핑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할만하네?'였다. 춥고 번거롭고 여러모로 귀찮을 테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지만, 남편 덕분에 겨울 캠핑을 경험했고, 퀘스트를 완수해내 듯 드디어 사계절의 캠핑을 모두 맛보게 됐다.


코 끝에 닿는 차가운 공기와 난로의 훈훈함이 주는 온기가 어우러진 텐트 속에서 겨울의 먹거리, 겨울의 놀거리로 기나긴 겨울밤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순간들이었다.


남편은 이후에도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몇 번의 동계 캠핑을 더 다녀왔는데, 이번 동계 캠핑을 총괄하고 전두 지휘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텐트 치고 접는 것도 힘들고, 챙겨야할 짐도 많아서 무겁고, 밖에서 고기 굽는 것도 너무 추웠지만, 그래도 바쁜 일상에 지친 몸을 고요함과 따뜻함으로 힐링받는 게 캠핑의 매력 같아. 어쩌면 진정한 캠핑의 꽃은 동계 캠핑이 아닐까?”


부디, 내년 겨울에는 코로나 없는 세상에서 마스크 벗고 겨울 캠핑을 다시 한 번 즐길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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