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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Apr 28. 2021

절약하는 육아

더 이상의 흥청망청은 없다


결혼 전 나는 대부분의 월급을 여행, 술값과 택시비, 품위유지비(?) 등으로 탕진하며 살았다. 다달이 모이는 돈은 없었고, 신용카드 할부의 늪에서 허덕이며 ‘다음 달의 내가 힘내겠지!’하며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앞뒤 재지 않는 지출을 일삼았었다.


이제는 살면서 그렇게 돈을 흥청망청 써볼 기회가 없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 시절의 탕진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때 좀 더 열심히 돈을 모아놨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도 있다.


결혼을 하고도 가계 경제에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맞벌이로 일 할 때는 각자의 수입은 각자가 관리했고, 외벌이가 되고부터는 남편이 알아서 벌고 알아서 쓰고 알아서 모으게끔 방치했다.


결혼한 부부에게 경제권은 꽤 크리티컬한 문제고,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권력의 힘이 기운다고 봐도 무방한데, 우리는 독특하게도(?) 경제권을 서로에게 떠넘기기려했고, 자유분방한 성격 탓인지 둘 다 경제권을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지출 통장과 수입 통장을 구분해놓은 게 전부였을 뿐, ‘우리 사치 안 부리잖아?’라는 핑계로 자유롭게 돈을 썼다. (실제로도 과소비는 하지 않았다. 아마도)


과소비 안해도 텅장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변할 리 없다. 그러니 변화할 의지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임신을 하고 애를 낳더니 변했다. 드디어 현실에 눈을 뜬 건지, 작은 인간이 우리 가족에 합류한 뒤로 비로소 ‘절약’이라는 행위를 몸소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임신을 하기 전부터도 그랬고 출산을 한 뒤로도 줄곧 ‘돈 없는데 애 어떻게 키우지?’를 걱정했다. 당장 아기가 태어나 사용할 자잘한 물건들을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디라도 아프면 들어갈 병원비, 좀 크면 학원이다 뭐다 하며 들어갈 교육비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육아는 돈 쓰는 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왠지 자신이 없었다.


과연 얼마를 벌어야 애 키우기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나의 의문에 옛날에는 없이 살면서도 다 키웠다고 하시는 부모님 세대의 말씀과,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아무도 애 못 키운다는 말에 힘입어, 없으면 없는 대로 아낄 수 있는 건 아껴가며 우리 수준에 맞는 육아를 하다 보면 죽이든 밥이든 되겠지 생각했다. 아마 그때부터 절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혔던 것 같다.


아기 물건은 짧게 쓰는 것들이 많다고 하기에, 새 것 헌 것 가릴 필요가 없었고, 욕심을 낼 일이 없었다. 그저 주변의 육아 선배님들이 물려주시는 육아용품들을 모조리 받았고, 그것은 은혜로운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물론 당근마켓도 큰 조력자였다. 필요한 물건들을 키워드 알림에 입력해두고 무료나눔이 뜨거나 좋은 가격의 매물이 올라오면 빛의 속도로 사들였다. 아마 그래서 출산 준비를 하면서 제값 주고 산 물건은 아기띠, 젖병 정도였지 싶다.


5만원 주고 중고로 산 아기침대에 물려받은 물건이 가득했다.




장난감도 선물 받은 것들을 제외하면 중고를 활용하거나, 물려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몇 달 전 아이에게 처음으로 새 장난감을 사줬다. 그 마저도 할인 쿠폰 신공을 적용해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샀다.


아이는 몇 날 며칠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아무리 인기 장난감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가지고 논다고? 할 만큼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다.


개구리 사랑혀


‘그동안 너무 헌 것만 줬나?’싶은 반성의 시간을 잠깐 가졌다. 얘도 새것을 알아보는 게 아니 나며 남편과 애잔한 대화도 나눴다. 아이에게 새것들을 저렴하게 사주자는 이상한 목표의식이 생겨나면서 나는 맘카페 할인 정보방을 떠돌기 시작했고, 이제는 육아용품을 넘어 생활용품까지도 득템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점점 늘어가는 살림살이 키워드들


심지어 흥청망청의 아이콘이던 내가 요즘은 가계부까지 적어가며 수입과 지출을 관리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던 모습인데, 낯설게도 그렇게 살고 있다. 지출이 많은 주에는 배달음식을 자제하기도 하고, 유독 지출이 많은 항목은 그 다음주에 조금 더 신경 써서 돈을 쓰기도 한다. 아이가 불러온, 육아가 일으킨 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나 칭찬해




약 1년 동안 애를 키워보니, 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맞춰 새로운 육아용품들은 계속해서 필요했다. 어차피 아기는 금방 크고 변하니, 새 것이든 헌 것이든, 유명한 브랜드든 이름 없는 브랜드든 다 괜찮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가 커갈수록 다양한 영역에서 무언가를 비교하고 선택할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날 텐데, 나는 그때도 절약하는 육아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저렴한 옷을 입히고, 누군가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사용한다고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값비싼 음식이든 교육이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아이로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육아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그래서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하는가 보다. 그저 지금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잘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격려하는 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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