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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Jun 23. 2021

어쩌다 친정살이

출가 후 4년, 두 남자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돌아온 사연


2017년 결혼으로 출가한 이래 4년 만인 2021년, 나는 친정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남편과 아들, 두 남자를 덤으로 얹어서 데리고 돌아왔다.


결혼 전 내가 쓰던 방에서 남편이 잠을 자고 있고, 아이가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 가끔 어색할 때가 있다. 분명 내가 생활하던 익숙한 동네인데도, 어떨 때는 그 익숙함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선 듯 익숙한 친정살이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게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살던 전셋집이 5월로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 얼떨결에 분양받아둔 아파트가 한 채 있는데, 입주 시기까지 약 6개월 정도가 남아서 공백 기간 동안 전세 계약을 연장하거나 월세 계약을 해서라도 머무르고 싶었지만, 협상의 여지조차 남겨주지 않는 집주인 덕에 퇴거를 결정해야만 했다.


아이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남편의 출퇴근이 힘들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몇 달간 친정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기가 사용하는 물건을 통째로 들고 가야 하다 보니, 친정집에서는 사용하던 가구며 묵혀둔 잡동사니들을 한바탕 버리고 옮겼다. 아이가 생활할 방 한켠에 생긴 곰팡이를 제거하는 공사도 하고, 해충 방역도 했다.


이사 전부터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거나 무료 나눔을 하는 등 끊임없이, 쉬지 않고 짐을 줄였음에도 짐은 왜 계속 많은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첫 이사다 보니 이사 노하우가 없는 우리는 우왕좌왕했고,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준비하려니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사를 앞두고 마음이 매일같이 바빴다.


엄마 맴도 모르고 신난 아들




4년을 머무르던 보금자리를, 그리고 동네를 떠나는 날, 아침 일찍 도착한 이삿짐센터 분들에 떠밀려 집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과 안녕하고 인사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왔다. 하필 그날은 비도 많이 내려서 왠지 더 서글펐는데, 아이는 하필 그때 잠이 오는지 칭얼거렸고, 나에게 감성에 젖어있을 시간 같은 건 주지 않았다. 역시 엄마는 울고 있을 여유 따위 없다.


우리의 신혼집이자 첫 번째 집이었던 곳, 비록 낡고 좁은 아파트였지만 나는 우리의 집을 꽤 많이 좋아했다. 이 집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집 안 곳곳 손 때 묻은 추억이 가득했다. 주변에는 맛집도 많았고, 인프라가 편리했던 동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그렇기에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꽤 컸었는지도 모른다. 애정을 듬뿍 쏟은 이 동네에서 첫 신혼생활을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안녕, 고마웠던 우리의 문래동


무사히 이사를 마치고 마침내 친정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한동안은 정리의 연속이었다. 버리고 치우고 버리고 치우고를 반복했지만, 좁은 집에서 다섯 명이 복작거리며 살려고 하니 짐도 많고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친정집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원래 쓰던 침구며 장난감들이 곁에 있어서 금방 적응할 줄 알았는데, 며칠을 새벽에 자다 깨서 두리번거리며 서럽게 울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차에 태워 재운 뒤 집으로 데리고 올라온 날도 있었다.


새벽 드라이브중…


사실 나는 친정 생활에 대한 묘한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독박 육아의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한 시간 정도는 나만의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 같은 것이 있었다. 또, 매일 엄마 밥을 먹으면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보다 더 편안한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정 살이의 시작과 함께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변에 산이 있는 친정집은 원래 모기가 많은 동네이기도 했는데, 집 안 어딘가에 모기들이 대거로 숨어있던 건지 며칠 동안 아이의 얼굴과 몸을 다 쥐어뜯어놨다.


속상하게도 내 체질을 고대로 닮았다ㅠㅠㅠ


모기 알러지가 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한동안 모기와 전쟁을 해야 했다. 모기장을 설치하고, 방충망을 새로 갈고, 물구멍과 하수구 등을 막았는데도 매일 밤 기본 두세 마리씩 모기와 만난다. 아직도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모기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게다가 집안에 한 두 마리씩 출몰하던 바퀴벌레 탓에 세스코 방역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 영향인지 자꾸 약 먹고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바퀴 놈들이 눈에 띄고 있다. 살면서 바퀴벌레를 처음 봤다는 남편과 원래도 벌레를 끔찍이 무서워하는 나는 매일 밤 공포에 떨고 있다. 일단 세스코 선생님이 돌봐주고 계시니 다행이지만, 이것 역시 모기와 마찬가지로 아직 해결이 진행 중인 과제다.




한 달이 지나니 아이는 언제 그렇게 자다 울었냐는 듯 집에 적응해서 잘 놀고, 잘 지내고 있다. 엄마의 밥은 여전히 맛있고, 엄마의 빨래에 빌붙기도 하며 나 역시 여러모로 몸 편안하게 신세를 지고 있다.


베란다에 맨날 붙어 지내시는 아드님


언제 손주와 같이 살아보겠냐고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여주신 부모님은 요즘 아이의 예쁜 짓과 재롱에 흠뻑 빠져계신다. 새삼 아이를 낳은 게 잘한 일인 것 같다는 실감이 든다.


결혼 전, 지금보다 더 젊은 날의 내가 머물렀던 둥지에서 나의 남편 그리고 아이와 함께 또 다른 추억을 새롭게 쌓아갈 것이다. 우리의 나날들은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그때 그랬었지 하며 울고 웃을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집 가계부 항목에서 식비 비중이 가장 높았는데, 배달음식이 엄마 밥으로 대체되면서 식비가 대폭 줄었다. 무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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