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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Sep 19. 2021

인생 16개월 차 아들의 첫 캠핑 데뷔기(2)

엄마 아빠만 힘들었지 뭐


이래서 가족 동반 캠핑을 가는 거였어


시아버지는 창고에 넣어뒀던 캠핑용품을 캠핑장으로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남편이 텐트와 타프를 피칭하는 걸 도와주고 가셨는데, 그 도움의 손길이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아기를 데리고 캠핑을 가면 한 명은 육아를 전담으로 해야 하고, 한 명은 집 짓는 공사를 도맡아서 해야만 한다. 그래서 누군가 애 보는 일을 잠깐 도와주거나, 집 짓기를 약간 도와주기만 해도 캠핑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그간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여럿이 뭉쳐 같이 캠핑을 다니는 광경을 자주 목격해왔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와보니 그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아주 절실하게 이해하게 됐다.



돌멩이만 가지고도 잘 노는 아이는 캠핑장에 놓여있는 자동차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캠핑장 옆에 바로 흐르고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도 했다. 우리가 예약한 캠핑장에는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트램펄린을 탈 수도 있어서 아이 동반 캠핑에 더없이 좋을 장소였다.




감성을 쫙 뺐더니 의식주만 남았다


마침내 집이 완성됐다. 어딘가 힘이 빠진 타프부터 시작해 휑한 살림살이들까지, 예전 알콩달콩 둘이 다니던 캠핑의 감성이 모조리 사라졌다. 아름다운 장식과 불필요한 소품은 빠지고, 오로지 먹고 자는 데만 집중된 생활형 캠핑의 자태를 갖췄다.


비포 앤 에프터


캠핑을 처음 와본 아이는 텐트가 신기한지 그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맨발로 파쇄석을 잘도 걸어 다닌다. 캠핑이 뭔지는 모를 테지만 밖에 나와있는 것만으로 그저 좋은가보다.


발 안아프니..


늘 그렇듯 한 것도 없는데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다. 랜턴도 작은 것 하나만 챙겨 와서 해가 지기 전에 밥을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간단하게 먹자고 해서 소고기를 가져왔으나,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다소 사치스러운 메뉴였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아이를 봐야 하니 따뜻하게 바로 구운 고기를 먹으며 맥주 한 잔 마실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구운 뒤 싸늘하게 식어가는 음식들


육퇴 후 다시 제대로 파티를 시작해보기로 하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텐트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아이는 챙겨 온 애착 담요를 끌어안고 순순히 눕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잠이 들었다!(입틀막) 텐트 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오늘 밤 부디 잘 자주길…


아이가 잠들고 남은 소고기를 구웠다. 아까 아이가 잠들기 전 매점에 맥주를 사러 갔는데, 아기 재우고 맥주를 마실 거라고 했더니 사장님은 스티로폼 상자에 아이스팩과 맥주를 같이 넣어주셨다. 센스가 보통이 아니시다.


둘이 다니던 캠핑은 어땠고 지금은 어떻고를 비교하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뱅앤올룹슨 스피커로 감성 터지게 음악을 들으며 가을밤을 즐기고 싶었는데, 아이가 깰까 봐 조그마한 스피커를 대신 켜서 들릴락 말락 조용하게 음악을 들었다.


다행히 먹고 마시는 동안 아이는 한 번도 깨지 않아서 나름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날 게 분명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캠핑의 묘미는 밤인데, 긴 밤을 즐길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아이와 함께하는 캠핑은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아이는 자다가 두어 번 칭얼거리며 깨어났다. 텐트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낯선 공간이라는 걸 인지했는지 엄마품과 아빠품에 파고들며 잤다. 전기요를 틀었는데도 공기가 제법 차가워서 행여나 추울까 새벽 내내 이불 덮어주고, 아이가 또 깰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결국 나는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 고생하는 캠핑


예상대로 아이는 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기상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잠에서 채 깨지 않은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첫 캠핑 치고 성공적이다’라며 속으로 안도하고 또 안심했다.


도톰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바깥으로 나왔더니 제법 춥다. 이날은 우리 외 한 팀이 더 캠핑을 하고 있었는데, 사이트가 떨어져 있어서 마주칠 일도 없었거니와 행여나 아기가 울면서 민폐를 끼칠까 걱정했으나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른 아침, 우리는 한껏 날 것의 상태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어봤다.


예전 같았다면 빵도 구워서 예쁘게 브런치도 해 먹고 커피도 여유롭게 마셨을 텐데, 아침은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우고 일찌감치 짐 정리를 하나 둘 시작해본다. 1박 캠핑은 세팅한 지 얼마 안 돼서 철수하려니 조금 아까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첫 캠핑 치고 성공적이었다는 것에 충분한 의의를 두기로 했다.


짐 정리하다가 애 보다가 또 짐 정리를 하려니 금세 체력이 기진맥진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컨디션도 엉망이다. 남편의 얼굴도 상당히 지쳐 보인다. 이제 힘들어서 캠핑 못 다니겠다, 이게 마지막 캠핑이라고 궁시렁거리며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캠핑 생각이 또 스멀스멀 난다. 못 살겠다 진짜!




둘에서 셋으로의 캠핑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고 기대해왔던 지난 1년 반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캠핑의 첫 시작을 끊으며, 아이와 함께하는 캠핑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고된 과정이라는 걸 배워버렸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사서 고생하는 캠핑의 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첫 글을 남겼었는데, 아들의 데뷔 캠핑이자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캠핑이 그때의 그 초심을 비로소 다시 상기시켜줬다.


애 데리고 뭘 그렇게 고생스럽게 캠핑을 다니냐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힘들어도 피곤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어지는 것이 캠핑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육아에 지친 일상을 자연 속에서 환기하는 것만으로, 캠핑장을 신나게 누비며 뛰어노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아직 한참이나 젊은 우리의 캠핑은 사서 고생할 충분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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