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보다는 조리에 익숙한 사람. 인생 처음으로 스스로 음식을 차릴 수 있게 된 것도 조리란 게 있어서 가능했다. 간편한데 쉽게 맛볼 수 있고 오히려 망치기 더 어려운, 요리의 틀을 바꾼 카테고리가 바로 조리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조리마저 질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오늘은 평범한 조리보다는 특별함을 내게 안겨주고 싶다는 마음. 그냥 라면보다는 파, 계란, 청양고추, 양파는 기본이고 더 새로운 첨가물을 찾게 되는 날. 어쩌면 조리에서 벗어나 난이도가 있는 요리라는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순간일 수 있다. 국밥이 맛있는 이유가 내 입맛에 맞게 직접 간을 하기 때문 아닌가. 이미 완성된 조리 식품이라도 직접 손을 본다면 얼마나 더 맛있겠는가. 이 재미를 찾게 되는 순간 충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리 한 번 해볼까?”
요리를 해보니 메뉴 선정, 식재료 준비, 숟가락을 들기까지 여러 관문이 있더라. 첫 요리 대상은 만만한 찌개. 돼지김치찌개를 해보자란 생각에 여러 유튜브 채널을 둘러보다가 결국 백종원님 채널에 정착했다. 필요한 재료들이 수두룩 나왔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계산을 하다 문득 이 정도면 사 먹는 게 낫지 않을지 수백 번의 잡생각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결국 카드 결제 승인이 났다는 소리가 들렸고 에코백에 바리바리 집어넣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세팅.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으로 "그냥 조리법이랑 똑같이 하라"라고 밝힌 라면 연구원의 마인드를 본받아, 백종원님이 계량한 만큼 똑같이 준비했다. 음식 넣는 타이밍과 불의 세기 정도까지. 점차 김치찌개 모양이 나왔고 냄새도 그럴듯했다. 타이밍 좋게 여자친구가 왔고 바로 뜨끈한 밥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눈이 세로로 긴 동그라미로 변했고 ‘진짜 맛있다’라는 말이 연달아 나왔다. ‘됐다... 성공적이었다’는 자화자찬 끝에 우린 음식을 남길 생각이 국물도 없는 기세로 밥을 먹었다.
요리를 자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지 5개월째. 찌개의 다음 스텝은 무엇인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새로운 요리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요리를 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몸소 알게 된다. 지금까지 배민에서 손가락으로 요리했던 게 몸에 배어, 주방에서 온몸으로 요리할 자신이 없다. 저번에 먹은 김치찌개의 맛은 잊지 못하지만, 추억과 스몰토크의 썰이 되었다는 걸로 금세 만족하게 된다. 이렇게 요리가 직업인 분들을 존경하게 되고, 밀키트와 배달어플을 만든 분들을 사랑하게 된다. 또 삼시세끼 밥을 차려주신 어머니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되기까지 요리란 게 효심까지 갖게 할 줄은 몰랐다. 지나가는 말로 요리 한번 해드린다고 했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엔 가능할까?
요리에 게으른 나와는 다르게 여자친구는 꽤 재능이 넘친다. 스물한 살부터 자취해서 그런지 한식 정통 찌개는 물론 스페인 음식을 필두로 글로벌 요리까지 시도한다. 역시 요리란 것은 생존 본능과 직결하는 듯하다. 주변 지인 중에 자취를 오래 하다 보니 요리 실력이 늘고 있다거나, 요리가 취미가 되었다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지 않나. 독립하게 되면 맞닥뜨리는 본능적인 문제는 밥 문제니까. 요리라는 행위가 주는 맛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자취를 시작하게 된다면 내 안에 숨어있는 요리라는 욕망이 옴짝달싹하고 있지 않을까. 첫 자취의 첫 요리가 찌개가 아니길. 꽤 근사한 요리를 시도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