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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Dec 14. 2023

예비 주니어에게 주니어 카피라이터가

 2023년을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 첫 도전과도 같았던 미션이 있었다. 현직자 멘토링이 메인 포인트인 광고 동아리에서 멘토가 되는 것. 광고 한 번 해볼까 슬쩍 발 내딛는 대학생들의 등을 떠밀고 ‘나도 했는데 너도 할 수 있다’고 입김을 불어주는 역할. 당시 입사 3년차. 경력이 계곡물처럼 얕은 내가 어찌 바다로 나아가려는 광고지망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등 여러 잡생각이 수더분했다. 그와 동시에 제안을 주신 선배님께 못하겠다는 말은 곧 죽어도 하기 싫은 아이러니한 상황. 내가 그 정도로 뻔뻔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나. 회사를 다니며 매일매일 배우고 있고 느끼는 게 그렇게 없진 않을 텐데… 예비 주니어가 될 친구들에게 이 생생한 체험만이라도 공유하면 그나마 유튜브에서 접하는 것보다는 더 생생한 앎이 되지 않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멘토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1년이 지나 다음 기수인 24기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었다.


 23기 수료식과 24기 대면식이 동시에 진행되는 강의실. 수료PT 이후 여러 이벤트가 진행된 후 마지막에 한 마디 소감을 말하는 자리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이라 심히 당황스러웠다. 어찌할지 모르는 상황에 정제되지 않은 머리를 안고 터덜터덜 앞으로 나갔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시작했다. 중간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싶었다. 한 줄로 요약해보자면, ‘본인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해도 상관없다’ 이 한 줄을 뭘 그리 요란하게 말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얼굴이 후끈해진다. 이실직고하자면 원래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수료식 이후 광고에 한 발짝 다가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한 마디’가 아니었던 게 문제였다.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한 마디’처럼 꽤 길이감이 있었고 뒤에 연달아 한 마디 하실 멘토님들께 실례일 듯 싶어 횡설수설 말을 마쳤다. 이 아쉬움이 너무나 컸던 건 사실이라 꼭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수십 마디’는 다음과 같다.


<예비 주니어에게 주니어 카피라이터가>

 수료식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빈말이나 감정 가득 담은 오그라드는 말을 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이 상투적인 속담, 외우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주니어 3년이라도 일 관련해 말할 게 생기는 게 저조차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짧지만 제가 겪은 바를 토대로 어딘 가의 주니어가 될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먼저 “최대한 다양하게 실수해보세요.”
 처음부터 갓벽하게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는 분명히 있고, 실수할 것을 두려워말고 받아들이세요. 다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마세요. 이전에 저지른 실수를 복기해 다음번에는 완벽하게 처리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차라리 매뉴얼을 만드세요. 주어진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상사로부터 신뢰를 쌓을 수 있고, 다음 스텝의 새로운 일을 해나갈 수 있어요. 최대한 주니어일 때 다양하게 실수해보자고요. 우리에겐 실수할 명목인 주니어란 타이틀이 있잖아요.

 다음은 “최대한 마음껏 질문해보세요.”
 단 질문을 위한 질문은 금물. 인턴일 때 제가 느낀 바 윗분들이 보기엔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곧 적극적인 태도로 인식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질문할 게 생긴다는 건 궁금한 게 있다는 거고, 또 잘 해내고 싶다는 표현이잖아요. 일이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일 테고 선배님들 발걸음을 따라가기 위해선 우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어요.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진도를 못 나가게 됩니다. 뒤처지게 되고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선배들에 기가 죽게 되고 점점 말을 잃게 될 거예요. 설상가상 선배로부터 “원래 말이 없니?” 이 말 들으면 우리 마음의 문도 고장 난 자동문처럼 끼익끼익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닫칠 거예요. 이 혼돈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면, 질문을 아이템처럼 사용해야 해요. 잘 사용한 만큼 레벨 업도 쉬워질 거예요.

 마지막으로 “최대한 자신에게 칭찬해주세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사무실과 회의실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고 있는 게 주니어의 웃픈 실상이에요. 네모난 자존감이 둥글둥글해져서 마음도 이리저리 심란해지죠.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에게 칭찬받게 된다? 아주 조그마한 일이라도 상관없어요. 겨울잠 자듯 웅크린 자존감이 봉긋 올라옵니다. 굽은 어깨가 살짝 올라간 듯. 그렇지만 일적으로 칭찬 받기가 사실 어렵잖아요. 그러면 스스로 잘했다 칭찬해주세요. 오늘 퇴사 안 했네? 잘했다! 데드라인 잘 지켰네? 잘했어! 아이데이션 회의에서 하나 팔았네? 정말 잘했다! 사소한 거라도 칭찬이 쌓이면 자존감도 회복될 것이고 멘탈 부여잡기에도 꽤 도움이 될 거예요. 스스로를 칭찬으로 혼쭐 내주는 시간 한 번 가져보자고요.

 

 지금 보니 위의 말을 수료식 날 소감으로 했다면… 한 껏 텐션이 올라간 수료식 분위기를 제대로 망칠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바람은, 23기 친구들이 안고 있는 회사 생활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냈으면 좋겠다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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