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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Dec 07. 2020

광고 카피에 나타난 은유법의 활용과 효과 연구

은유의 개념과 시에서의 활용

 박현수(2015)에서 은유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대상, 즉 비유기의(보조관념)를 다른 대상, 즉 비유기표(원관념)로 대체하는 의미무늬다. 비유기표와 비유기의는 이질적 범주에 속하지만 유사성을 통하여 두 가지 차원을 통합함으로써 다층성을 그 속에 지니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유사성은 현실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두 차원의 세계를 연계시킨다는 점에서 ‘내적 연관성’ 혹은 ‘필연성’이라 부를 수 있다. “은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轉用)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한 대상의 양상이 다른 하나의 대상으로 전이되어서 의미를 변용, 확장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은유의 형식을 보면, ‘A는 B이다’, ‘A = B’로 문장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A와 B는 각각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진 찍을 때 터지는 플래시는 번개이다’라고 한다면, 전자와 후자의 동일한 속성이 무엇인지 유추해보게 된다. 둘 다 어둠을 잠깐이라도 밝게 비춘다는 동일한 속성을 찾게 되며, 이는 은유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은유의 활용이 펼쳐지는 곳들 중 하나는 바로 시이다.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 「동천(冬天)」   


 박현수(2015)는 위의 시를 은유가 가장 잘 활용된 시로 평가한다. 여기서 ‘눈썹’=‘초승달’이다. 그 둘의 형태가 유사성을 띄기에 이질적 차원에 속하는 ‘눈썹(비유기표)’과 ‘초승달(비유기의)’은 연속성을 획득하여 합일의 상태에 도달한다. 님에 대한 화자의 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게 아닌, 감성이 풍부해지는 밤 떠오르는 초승달에 님의 눈썹을 동일시해 화자의 마음을 표현한 점을 보아 은유로 감정을 극대화시킨 시라고도 볼 수 있다.    

  

동장천 은어를 닮은 아이가 귤껍질을 까서

개미에게 아파트를 지어주고 있다

이마가 맑고 눈이 순한 사내아이가

화분에서 혼자 기어나와 길 잃은 개미를 사랑해서

베란다에 햇살 줄기가 명주실로 쏟아져 내린다

천리향 향기를 마시고 햇살이 마들렌처럼 통통해진다

통통한 봄 햇살을 받아먹은 아이,

은어가 되어 옆구리를 희번덕이며 헤엄쳐 간다

폭포수 같은 햇살 속을 날아 천리를 간다

-최서림, 「은어(銀魚)」        


 위의 시는 ‘아이’를 ‘은어’에 비유하고 있다. 둘의 유사성은 ‘햇살 줄기 = 명주실’, ‘햇살 = 마들렌’처럼 인간과 자연, 객체와 객체의 연계로 이어지고, 급기야 아이와 ‘햇살 속을 헤엄치는 은어’의 동일시에 도달한다.(박현수, 2015) 이런 은유법의 활용으로 그저 베란다에서 개미와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화사한 햇살 아래 활발한 순수함을 지닌 아이의 모습이 연상할 수 있다. 

 권혁웅(2010)에서 은유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언어의 특성이다. 서로 다른 사물 간에 연계 가능한 어떤 지표가 있을 때 은유가 성립한다. 권혁웅(2010)은 직유를 은유에 포함해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처럼’, ‘~같은’과 같은 가시적 문법 요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은유의 생산성이 두 대상 사이의 긴장에서 관찰된다면, 직유의 생산성은 두 대상을 연계하는 술어작용의 긴장력에서 가늠된다. 그리고 부분적인 은유에 비해 전체 구성과 관련을 맺은 은유가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은유가 된다고 한다. 수평적인 특질이 시편 전체로 확산되면서 수직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원관념이 다른 모든 은유를 지탱하는 체계의 중심에 자리하기 때문에 은유의 원관념은 일종의 제유적 본유개념이 된다. 

 은유의 유형을 중첩(A=B), 비교(A:B), 병렬(A+B)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누었다. 분류 기준은 유사성의 정도이다. 중첩은 유사성이 가장 강한 경우이며, 비교는 중간인 경우이고, 병렬은 가장 약한 경우이다. 먼저 중첩은 두 개 이상의 대상이 결합해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는 것, 혹은 두 개 이상의 언술이 동일성의 틀 안에서 결속하는 것, 이 경우에 하나의 언술 영역은 다른 영역의 원관념이자 보조관념이 된다고 권혁웅(2010)은 말한다.      


저녁이라면 이곳도 가끔씩 여우가 출몰하는 곳일까,

가슴을 깊게 파내린 저 여자,

이미 유순하게 길들여진 듯

어깨를 타고 앉은 여우 한 마리 이쪽을 흘낏거린다

은빛 털의, 살기를 감춘

유리 눈동자 유난히 번들거리는

여유는 어느 사막을 헤매다닌 것일까,

아니라면 내가 아는 사막이 이미 여기까지 와 있나,

지금은 사자(死者)의 추모에 어울리는

황홀한 음악이 연주되는 시간,

뿌우연 실내 조명 사이로

죽음에 기댄 듯 키 큰 선인장 듬성듬성 서 있다

이곳은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곳입니다

더위를 막 넘기면서 찾아든 데스 밸리,

안내원은 저만큼 모래 구릉 쪽응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여우는 기둥 사이로 몸을 숨기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시간이 사제가 아니라면

누가 저 메마른 여우 울음을 엿듣기라도 할 것인가

나는 노련한 여우가 이미 여러 죽음을

예고했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알아차린다

누구나 죽음 뒤켠으로 잠시 물러설 수 없다면

스스로의 무덤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할 때,

다만 저 여우, 무너져 내리는 모래 살 위에

품위 있게 앉아서

다가오는 죽음을 차례로 점지하리라

-김명인, 「여우를 위하여」     


 권혁웅(2010)은 위 시에서 산 여우와 죽은 여우 목도리 사이의 중첩이 시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했다. ‘어깨를 타고 앉은 여우 한 마리’, ‘살기를 감춘’, ‘유리 눈동자’를 통해 살아있는 여우가 아닌 여자 목에 걸쳐진 여우 목도리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여우 목도리와 ‘여우는 기둥 사이로 몸을 숨기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무너져 내리는 모래 살 위에 품위 있게 앉아서 다가오는 죽음을 차례로 점지하리라’와 같이 산 여우가 동일성이라는 틀 안에서 결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죽은 여우와 같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상념의 끝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죽음이 있을 것을 내포하고 있다. 

 다음은 비교이다. 비교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유사성의 영역을 두고 결속해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것으로 중첩과 병렬의 중간에 위치한다.   

 

임종의 입회자는 선풍기뿐

바람이 그녀의 몸 위를 두리번거리네 어젯밤

이 방에서 움직이던 두 개의 장난감 중에 하나는 멈추고

하나만 남아서 여전히 심벌즈를 두드리듯

바람의 손뼉을 치고 있네

방은 뚜껑이 열리지 않는 유리병처럼 밀봉돼 있고

냉장고 안에선 생선이 썩고

그녀의 입 속에선 혀가 썩네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몰려다니는 통에

고장 난 그녀는 도저히 잠깰 수 없었다네

몸속에 플러그처럼 박힌 아기를 잘라버리자

이제 열린 책처럼 알몸으로 펄럭거리는 그녀

아무것도 더 할 일은 없었다네

들숨 날숨 바쁘게 공기를 갈아줄 일도 없었다네

전력 회사와 아직도 연결된 불쌍한 선풍기만

벙어리 증인처럼 그녀의 뺨을 이쪽 한 번

저쪽 한 번 밤새도록 갈기고 있었을 뿐

-김혜순, 「선풍기의 살인」     


 위의 시는 살아 있는(=작동하는) 선풍기와 죽은(=고장 난) 그녀의 자리 바꿈 즉, 죽은 사람에 대한 사물화와 움직이는 사물에 대한 의인화는 정확히 등가적이어서 죽은 이가 고장 난 물건이 되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선풍기는 살아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 이 시를 떠받치는 힘이다. ‘고장 난 그녀는 도저히 잠깰 수 없었다네’에서는 죽은 그녀가 장난감과 같이 딱딱해져버린 것을 볼 수 있고 ‘전력 회사와 아직도 연결된 불쌍한 선풍기만 벙어리 증인처럼 그녀의 뺨을 이쪽 한 번 저쪽 한 번 밤새도록 갈기고 있었을 뿐’에서 딱딱한 선풍기가 딱딱해진 그녀의 뺨을 밤새도록 갈기고 있다는 의인화를 통해 두 개의 대상의 유사성을 결속해 일대일 대응을 이루고 있다. 이로써 죽음의 현장성과 비극성을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병렬은 두 개 이상의 대상 혹은 언술이 유사성의 틀을 통해 느슨하게 결속해 있는 것으로 각각은 개별적인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 비슷한 점을 공유한다.   

   

풍경(風景)이 풍경(風景)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速度)가 속도(速度)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절망絶望」     


 1행부터 5행까지 ‘A가(이) A를(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란 틀을 유지한다. 하지만 형식적인 틀에서의 유사성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내용상 무슨 유사성이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8행에서 다시 그 틀이 등장하므로 ‘풍경’, ‘곰팡’, ‘여름’, ‘속도(速度)’, ‘졸렬(拙劣)과 수치’가 ‘절망(絶望)’이란 내용의 유사성을 느슨하게 결속시킬 수 있게 된다. 1~5행과 8행에서의 부정적인 단어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주체적으로 반성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이 시의 주요 틀을 따르지 않고 있는 6~7행은 ‘A는(은) B에(에서) 오고’란 틀을 유지한다. B는 장소와 시간 둘 다 속하는데 유사점으로는 ‘A’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온다. 7행에서 ‘구원’을 통해 1~5행과 8행의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우리는 다른 곳을 봐야 하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구원이 찾아온다는 점을 드러낸다.

 김준오(2010)에서는 은유를 휠라이트의 용어인 치환은유를 빌어 설명한다. 이 치환은유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의 원관념에 하나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단순은유’가 있고, 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확장은유’가 있고, 은유 속에 또 은유가 들어 있어 이중의 현상을 나타낸 ‘액자식 은유’가 있다. 이러한 분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유가 서로 다른 사물들이 비교됨으로써 우리에게 충격적 인식을 주는 점이다. 이런 충격적 인식을 위해서 또 하나의 은유원리인 병치은유가 필요하다. 휠라이트는 병치은유 형태에 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조합이란 서로 다른 사물들이 당돌하게 병치됨으로써 빚어지는 ‘새로운 결합’의 형태다.      


男子와 女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김춘수, 「눈물 」     


 김준오(2010)은 위 시에서 치환은유적 요소가 있다고 했다. ‘남자’, ‘여자’의 이미지와 ‘오갈피나무’의 이미지가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는 유사성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이미지의 통합은 시적 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치환은유는 자세히 말하면 하나의 원관념에 하나의 보조관념이 연결된 ‘단순은유’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새로운 결합으로서 병치은유가 적용된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모래 밭에서

受話器

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 「바다의 層階」     


 위 시에서는 장면과 장면,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우리의 일상적 감각을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질적인 이미지가 비논리적으로 병치되어 있어 현실이나 관념의 모방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병치는 모더니즘시의 주된 기법이 되어 있다. 이런 병치은유는 이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언어와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생성될 수 있게 한다. 이는 더 나아가 해체주의적 관심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치환은유와 병치은유의 결합상태의 시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국을 아는가.     

疾走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斷末摩를 꿈꾸는

벼랑의 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墬落을.

-이형기, 「폭포」     


 위 시는 부분적으로는 병치은유지만 전체적으로는 치환은유가 되어 병치은유와 치환은유의 결합형태가 된다. ‘시퍼런 칼자국’, ‘疾走하는 전율’, ‘벼랑의 直立’, ‘石炭紀의 종말’, ‘장수잠자리의 墬落’의 이미지들은 각각 병치은유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시의 제목인 폭포를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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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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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은유의 개념과 시에서의 활용은 <박현수,『시론』, 울력, 2015.>의 “제3부 이념과 표현”에 “제11장 은유와 환유 ― 차원의 감각”, <권혁웅,『시론』, 문학동네, 2010.>의 “제2부 시학의 여러 영역들”에 “제8장 비교 ― 은유란 무엇인가?”, <김준오,『시론』, 제4판, 三知院, 2002.>의 “제2장 詩의 構成原理”에 “제3절 비유” 중 은유의 개념과 시에서의 활용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정리한 것임.

김준오,『시론』, 제4판, 三知院, 2002.

권혁웅,『시론』, 문학동네, 2010.

박현수,『시론』, 울력, 2015.

전동균, 「시의 기법을 활용한 광고 표현 연구」, 중앙대 박사학위 논문, 2006.

Aristoteles, 천병희 옮김, 『시학』, 문예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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