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을 중심으로
종강을 맞이한 첫 주말이라 그런지 잉여스러운 고민이 참 반갑다. 오늘도 어김없이 넷플릭스에 들어가 서핑을 한다. 시험기간에 엄두도 못 냈던 영화 카테고리에서 장거리 헤엄을 치던 중,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래 오늘은 이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요즘 SNS에 짤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으며, 결국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뜬금없는 전개라 생각하겠지만,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라는 카테고리로 그 둘의 접점을 찾아볼 수 있겠다.
1980년대는 전두환 집권 시기 즉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다. 당시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을 실시해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자 했다. 더 나아가 국민의 시선의 창이 되는 언론 또한 탄압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도자 충성을 위한 소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시대적 상황 속 정치와 관련된 직접적인 이야기를 담기는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문열의 단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이라는 주인공 설정을 통해 독재라는 의미를 순화시켰지만, 우리가 겪었을 과정들을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깊은 공감과 의미화의 과정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권력자라는 욕망 대상을 두고 엄석대와 담임 선생님 사이의 한병태(주인공)와의 관계를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구조로 분석하고자 한다.
한병태는 합리적인 선거 방식이었지만 대부분 공부 잘하는 순서로 반장, 부반장이 되었던 서울 학교와 달리 제대로 된 선거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점에 놀란다. 서울에서는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꽤 있어 반장이란 직책을 넘볼 수 없었겠지만, 시골에서는 자신이 반장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살펴보게 된다.
나는 등교하자마자 그 가능성을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그 충고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우선 반장 선거는 한 학기에 한 번 하는 서울과는 달리 거기서는 그 이듬해 봄에야 있을 거라는 얘기였고, 또 그때에는 반이 어떻게 갈릴지 알 수 없어 준비를 해보았자, 갑자기 흘러들어온 내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설령 이길 수 있다 해도, 그동안을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굴욕에 시달릴 일이 꿈같았으며, 게다가 엄석대도 내가 느긋이 다음 해를 준비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한병태는 서울학교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아버지가 공무원이라는 집안 환경, 공부와 미술 실력 등을 통해 시골 아이들보다 우월함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계획대로라면 전학 첫날 담임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싱겁게 끝난 자기소개로 실패하게 된다. 이는 결국 엄석대라는 반장을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표출할 기회를 얻게 된다.
서울 무슨 학교랬지? 얼마나 커? 물론 우리 학교와는 댈 수 없을 만큼 좋겠지? (…) 공부는 어땠어? 거기서 몇 등이나 했지? 다른 건 뭘 잘 해?
이런 엄석대의 능력에 대해 한병태는 놀란다. 담임 선생님에게 품었던 야속함까지도 동시에 풀어주는 등 반장인 엄석대와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점심시간 한병태는 괴이한 상황에 마주치는데 주위 학생들이 엄석대에게 다가가 반찬을 주고 물을 떠다 주는 상황을 보게 된다. 한병태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그가 물 당번이었을 때인데 그는 당번 역할을 거부함과 동시에 담임 선생님께 고발하겠다고 한다. 한병태가 생각하기에 반에서 최상의 권력자는 담임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욕망의 삼각형’ 이론에 적용 가능해 보인다.
한병태는 서울에서는 이루지 못한 반장을 시골에서 자신의 환경을 기반으로 반장에 대한 가능성을 계속 살핀다. 그 과정 중 엄석대라는 인물을 접하게 되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엄석대의 권력 하에 휘둘리게 되면 다음 반장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담임 선생님을 일종의 수단으로 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저항을 하게 된다. 권력자라는 욕망 대상을 두고 있는 한병태라는 욕망 주체를 고정하고 욕망매개자에 따라 어떤 관계인지 분석을 하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등장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욕망 주체 – 한병태, 욕망 매개자 – 담임 선생님, 욕망 대상 – 권력자일 때이다. 담임 선생님은 한 반을 통솔하는 사람이며, 권력의 측면에서 돈키호테의 아마네스처럼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이다. 시골에서 반장의 역할은 담임 선생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한병태는 이런 권력자라는 욕망 대상이 있어 담임 선생님의 권력을 모방할 수 있는 반장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 담임 선생님과 한병태는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먼저 선생과 학생이라는 신분적 차이가 존재하고, 정신적 거리는 멀 수밖에 없다. 즉 외적 매개, 외적 간접화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 욕망 주체 – 한병태, 욕망 매개자 – 엄석대, 욕망 대상 – 권력자일 때이다. 엄석대는 반장으로 청소 검사, 숙제 검사 등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권한을 물려받았다. 한병태는 앞으로 반장이 되기 위해서는 엄석대를 뛰어넘어야 하며 그의 약점을 찾아야 한다. 한병태는 공부에 대해 자신이 서울 학교 당시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만큼 시골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은연중 생각했다.
내가 공부 쪽에 자신을 가졌던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서울의 학교와 그 학교의 격차로 보아, 거기서의 일등은 쉬울 것으로 보인데다가 내 눈에는 아무래도 석대가 공부하는 아이로는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병태는 아버지에게 엄석대의 만행을 말하지만, 오히려 아버지는 엄석대가 이행하는 반장의 역할에 대해 칭찬하고 커서 큰 사람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로써 한병태는 권력자를 향한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되고, 반장이 되고자 목표 짓는 게 아니라 엄석대라는 인물의 만행을 최고 권력자 담임 선생님께 고발해 지위를 하향평준화시키고자 한다.
적어도 그가 그 라이터를 석대에게 준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이라는 사실만은 명백히 하게 했다. 실은 그거야말로 석대의 비행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있던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로써 욕망 매개자로 담임 선생님을 두었을 때보다 엄석대를 욕망 매개자로 보면, 한병태와 엄석대의 거리가 가까워지게 되어 내적 간접화에 해당하게 된다. 하지만 한병태가 믿었던 성적 또한 엄석대가 우월한 결과를 갖게 되고, 엄석대의 주변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등 한병태는 점점 반장과는 멀어진다는 쓸쓸한 자기 분석으로 학급 생활에 비극적 상황에 접하게 된다.
하지만 엄석대의 왕국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등장으로 뒤죽박죽 된다.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아이들은 정의로움을 배우게 되고, 엄석대의 만행 또한 스스로 밝히는 등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한병태는 반 아이들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선생님만 쳐다보고 머뭇머뭇 밝히다가 한 번호 한 번호 뒤로 갈수록 차츰 목소리가 커지면서, 눈을 번쩍이며 쏘아보는 석대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임마’, ‘새끼’ 같은, 전에는 감히 입 끝에 올려 보지도 못한 엄청난 욕들을 섞어, 선생님에게 고발한다기보다는 석대에게 바로 퍼대는 것이었다. 이윽고 39번인 내 차례가 왔다. “저는 잘 모릅니다.” 내가 선생님을 쳐다보고 그렇게 말하자, 순간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이렇게 한병태가 변한 이유는 이전의 엄석대가 한병태를 다루는 태도의 변화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병태는 청소 검사를 엄석대가 계속 통과시키지 않자 다음에는 거짓 미소를 보이고, 눈물을 흘리는 등 굴복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아끼던 샤프펜슬까지 석대에게 줌으로 엄석대가 청소 검사를 통과시켜준 너그러움에 보답을 한다. 그 이후로 엄석대는 반에서의 한병태의 지위 회복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보호해준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한병태는 ‘우리들의 솜씨’라는 그림 대회에 엄석대 그림까지 대신 그려 공동 수상하게 된다. 이후 한병태는 엄석대에 대해 모방을 넘어 동격화하는 상황까지 나타난다.
그 날 오후 갑자기 전보다 갑절이나 내게 은근해진 석대의 태도였다. 그는 나를 다른 아이들과는 사뭇 격을 달리해 대접했고, 그 곳에서의 놀이도 거의 나를 위한 잔치처럼 진행시켰다. 아니, 그 날만은 숫제 나를 자신과 동격으로 올려놓았다는 편이 옳겠다.
이로써 욕망 매개자로서 엄석대를 통해 한병태는 자신도 욕망의 대상, 권력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한병태는 엄석대 권력을 모방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자기 존재를 반 아이들에게 보인다. 반 아이들과 싸움을 통해 12등이라는 순위에 들기도 한다. 결국 한병태는 권력자라는 욕망의 대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엄석대를 자신과 동격화해 권력의 힘을 대리 만족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나타난 후 한병태의 태도 변화에서 드러난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완전하게 속해 있지는 않은 존재, 공동체와 외부 세계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 존재”가 희생물로 선택된다는 것이다. 주변인 혹은 경계인은 주류에서 밀려나 있기에 복수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
(이찬수, 「모방 욕망, 소수자 재생산과 그 극복의 동력 ―르네 지라르의 폭력 이론을 중심으로―」, 통일과평화, 2016, p. 222.)
한병태는 엄석대의 보호를 받기 전, 모든 아이에게 따돌림을 받았다. 심지어 담임 선생님까지도 “너의 태도를 바꿔라”라고 말하고 부모님도 성적이 떨어지고 있는 한병태에게 심한 꾸지람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제해준 사람이 엄석대이고 한병태는 그에게 물리적 지원뿐만 아니라 도움이 되고자 한다. 한병태는 주변인의 삶으로서 자기 자신이 희생물로 선택한 것이다. 한병태에게 엄석대는 한병태였고 한병태는 권력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은 방해꾼이다. 그래서 모든 반 아이들이 엄석대에 등을 돌릴 때 한병태는 모든 아이들에게 등을 돌린다.
(…) 개표는 다시 계속되었고, 곧 결과가 나왔다. 김문세, 박원하, 황영수의 순으로 표가 모아졌다. 그리고 5표, 4표, 3표, 1표짜리가 대여섯 나오더니, 무효표도 둘이 나왔다. 석대의 표는 단 하나도 없었다. (…) 여기서 한 가지 밝혀 두고 싶은 것은 그 무효표 두 표이다. 한 표는 틀림없이 석대 자신의 것이었고, 다른 한 표는 바로 내 것이었다.
한병태는 엄석대와의 관계를 통해 욕망의 대상, 권력자를 비교적 가까이 접한다고 볼 수 있었지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등장해 왕국을 뒤흔드는 바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짐을 직관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썩은 동아줄을 손에 쥐고 놓지 못했다.
등장인물들의 욕망의 삼각형 구조를 통해 살펴보기 전, 소설의 내용은 독재 정권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알레고리가 보인다. 당시 1980년대 시대적 배경을 잘 반영해 쓴 작품인가 동시에 이문열의 보수적 사상 또한 한병태를 통해 드러난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진보적 개척 능력을 바탕으로 변해가는 반의 체계에도 불구하고 한병태는 엄석대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을 통해 보수적 측면이 보인다. 이로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사상이 적절히 반영된 이문열의 대표 정전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